몰래 녹음으로 드러난 '아동학대' 정황... 법원, 교사 정직 처분 취소

입력
2024.05.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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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대법원이 "녹음파일 증거 안 돼" 무죄
행정법원도 형사재판 '위법증거' 취지 인정

학부모가 자녀 가방에 몰래 넣은 녹음기를 통해 아동학대 정황이 드러난 사건에서, 교육청이 해당 교사에게 정직 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는 1심 판결이 나왔다. 위법한 방식으로 녹음한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단을 따라, '징계가 위법한 녹음 파일을 근거로 이뤄졌다면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9부(부장 김국현)는 서울 광진구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A교사가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낸 정직 처분 취소 소송에서 20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A교사에게 내려진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A교사는 2018년 자기 반 학생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학생에게 "학교를 안 다니다 온 애 같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A교사의 이 발언은 해당 학생 학부모가 몰래 학생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녹음하면서 발각됐다. 이 녹음파일은 형사재판에 증거로 제출됐고, 1심과 2심은 이를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몰래 녹음한 파일의 증거 능력이 없다고 보아, 사건을 무죄 취지로 서울동부지법에 파기환송했다.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한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것이란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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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교사의 징계 사건 소송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대법원의 형사 판결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녹음파일 등을 배제하지 않은 채 그 존재와 내용을 참작해 이뤄진 징계는 타당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육청이 A교사의 징계 절차에 녹음파일을 직접 증거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징계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 밖에도 재판부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A교사를 위해 쓴 편지와 탄원서, 반성하는 A교사의 태도 등을 고려해 징계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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