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총학생회장 김진규(25)씨는 학내에서 '전세사기 해결사'로 통한다. 인하대가 위치한 인천 미추홀구는 대규모 전세사기가 잇따른 지역. 그래서 인하대 학생들 중에도 피해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변호사인 삼촌의 사무실에서 오래 일을 도우며 생활법률 지식을 쌓았던 김씨는 2022년부터 학우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벌써 누적 건수만 300건. 학우들을 도울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이 일은, 이제 학교 게시판에 상담 접수 창구까지 생길 정도로 제법 큰 일이 되어버렸다.
전세사기가 잇따르면서 김씨도 갈수록 바빠졌다. 재판을 함께 방청하며 피해 학생에게 복잡한 법률 용어를 설명해 주고, 계약을 앞둔 집을 찾아가 함께 사전 답사를 하기도 한다. 전세계약 시 주의할 사항을 정리해 학교에 배포하는 것도 김씨의 일이다. 이런 김씨의 노력이 알려지자, 인하대도 인천도시공사(IH)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해 IH의 긴급주거지원 주택을 연결해 줬다. 김씨는 "때론 강의를 빼먹고 남을 도우러 다니지만, 대학생들이 이런 일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상담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관악구와 동대문구, 인천 미추홀구 등 빌라가 밀집한 대학가에서 전세사기가 잇따르자 학생들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그러자 대학 당국은 물론이고, 총학생회와 교수들까지 나서 피해 학생을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이사가 잦고, 법률 용어에 친숙하지 않으며, 경제적 이유로 빌라를 많이 선택하는 20대가 바로 전세사기의 주요 피해자 중 하나다.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2022년 7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집계된 전세사기 피해자는 2,996명이다. 이중 20대 이하는 563명으로 30대(1,065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월세로 계약하던 과거와 달리 대학생 거주 원룸·오피스텔도 전세 계약이 늘어나며 피해자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학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구제에 나섰다. 한국외대와 영남대는 학교 인근에서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하자 국토교통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찾아가는 전세피해지원 상담소'를 마련했다. 법률 조언과 심리상담 등이 이뤄졌는데, 10일 하루에만 3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국외대에 마련된 상담소를 찾았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있는 학교는 교내 전문인력을 활용하기도 한다. 경희대와 서울시립대 등은 로스쿨 교수 및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피해 학생 지원에 나섰다. 로스쿨 학생들이 피해자를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서류를 작성하면, 교수가 검토하며 조언하는 식이다. 이수진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올해만 24건의 전세사기 상담 요청이 접수됐다"며 "기본 매뉴얼을 제시하고 개별 상담을 진행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차원의 자발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전세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엄정숙 부동산전문변호사는 "임대차 계약은 전 국민이 한 번씩은 반드시 경험하는 일"이라며 "의무교육 과정에 포함하는 등 교육을 통해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대학, 정부, 지자체가 협업해서 기숙사와 같이 학생들이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