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유럽 극우 정당들이 선거운동 초기부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스페인 극우 정당이 개최한 행사에 초대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를 맹비난한 이후 양국 간 외교 분쟁이 격화되면서다. 밀레이 대통령은 남미의 대표적 극우 인사이고, 산체스 총리는 중도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다.
20일(현지 시간) 스페인 매체 엘파이스에 따르면 이날 스페인 정부는 아르헨티나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겠다고 밝혔다. 대사 소환은 가장 강력한 외교적 항의 조치 중 하나로, 스페인 정부는 최근 몇 년간 모로코·알제리·이스라엘과 마찰을 빚는 와중에도 자국 대사를 불러들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외교 관계 단절까지 감수하겠다며 초강수를 둔 것이다. 산체스 정부는 자국 주재 아르헨티나 대사를 초치해 밀레이 대통령 발언에 항의하기도 했다.
산체스 총리의 격노는 지난 19일 시작됐다. 이날 스페인 극우 정당 복스(Vox)는 수도 마드리드에서 유럽과 전 세계 극우 정당 인사들을 초대해 '유럽 비바 24' 행사를 열었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의원, 안드레 벤투라 포르투갈 '셰가' 대표 등이 참석했고,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도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달 6~9일 열리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내로라하는 유럽 극우 인사들이 총결집한 초대형 이벤트인 셈이다.
AP통신은 "이날 정당들은 이민자와 기후 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발산했다"며 "유럽 극우 정당들이 유럽의회 선거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날 행사에 초대 받은 밀레이 대통령이 산체스 총리를 비난하며 불거졌다. 그는 "(산체스 총리는) 부패한 아내와 함께 하며 스스로를 타락시키면서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닷새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산체스 총리의 부인 베고냐 고메스가 부패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산체스 총리는 지난달 25일 고메스의 뇌물수수 혐의가 불거져 사퇴 압박을 받자 닷새간 외부 활동을 중단한 후 조기 총선 거부 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스페인 내 정치 공방이 격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밀레이 대통령이 기름을 끼얹은 셈이 됐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스페인 총리의 개인 치부를 거론하면서 양국 외교 관계는 악화일로에 있다. 일국의 정상이 타국 정상의 개인 문제를 건드리면서 외교 결례 논란도 커지고 있다.
다만 산체스 정부의 반발과 별개로 복스의 극우 행사는 지지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끌었다. AP는 "밀레이 대통령은 '자유'를 외치며 거의 대중 스타처럼 환영을 받았다"며 "다음 달 유럽의회 투표는 유럽 대륙이 전 세계 우경화 물결을 따를 것인지 확인시켜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