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 시세의 반값에 판다면... '렌탈깡' 의심하세요

입력
2024.05.21 15:01
렌탈 제품 50% 염가 판매, 26억 뜯어
급전 필요자 명의로 유령법인 만들어

가전제품 렌탈 계약을 체결한 뒤 곧바로 염가로 처분해 돈을 챙기는, 이른바 '렌탈깡' 수법으로 수십억 원을 가로챈 사기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렌탈깡 조직 총책 A씨 등 44명을 사기 혐의로 검거해 5명을 구속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은 범행 과정에서 유령법인 설립에 가담하고 범죄 수익 일부를 배분받은 법인 명의 대여자 23명도 수사 중이다.

A씨 등은 2017년 10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생활정보지 등을 통해 급전이 필요한 ‘내구제’ 대출 희망자를 모집했다. 내구제는 '나 스스로를 구제한다'의 의미로, 금융기관 대출을 받기 어려운 이들이 명의를 넘기는 대가로 금품을 받는 행위를 뜻한다. 일당은 ①수집한 대출희망자 명의로 100여 개의 유령법인을 설립한 뒤 ②대량으로 고가의 렌탈 제품을 허위로 주문 한 다음 ③제품을 재포장해 중고거래 사이트에 정상가의 50% 수준으로 되팔았다. 이런 식으로 일당이 벌어들인 범죄 수익은 26억 원에 달했다.

이들은 범행 전 유명 렌탈업체 위탁판매인과 설치기사로 위장 취업해 법인 명의 렌탈 제품은 회수나 채권 추심이 원활하지 않다는 빈틈을 간파했다. 또 수익을 올린 유령법인은 곧바로 해산 조치한 후 또 다른 법인을 세워 범행을 지속하는가 하면, 불법 유통경로를 숨기기 위해 제품에 부착된 일련번호 바코드 스티커를 제거하는 등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애썼다.

경찰 관계자는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신제품을 지나치게 싸게 팔며 내구제 대출을 의심해 봐야 한다"며 "계약 잔금 떠안기, 제품 강제 반납 등 피해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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