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자 44명 검거, 인도 위 무법자 일망타진… '자전거순찰대'를 아시나요?

입력
2024.05.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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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경찰청 자전거순찰팀 따라가봤더니...
무법천지 전동킥보드, 배달오토바이 싹~
창설 후 3개월 동안 지명수배 44명 검거
기초질서 단속 70%, 자전거순찰팀 '작품'
"민간봉사단체 협력해 더 안전한 도시로"

“전방에 2인 탑승 전동킥보드!”

지난 14일 오후 5시 30분, 정부세종청사 인근 한누리대로변의 한 상가 앞. 자전거도로를 따라 순찰을 돌던 세종경찰청 자전거순찰팀 선두 대원의 페달에 힘이 들어갔다. 경찰의 추적을 눈치챘는지, 속도를 올리는가 싶던 킥보드는 순식간에 골목으로 사라졌다. 나머지 4대의 순찰자전거가 일제히 속도를 올려 지원에 나서자 전동킥보드는 결국 100m도 못 가 멈춰 섰다. “도로교통법 19조 2항 동승자 탑승 금지 위반. 안전모 착용 의무 위반.” 앳된 얼굴의 탑승자들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탑승자들은 2010년생의 중학생들. 무면허 운전까지 확인돼 부모들에게 전화해 계도조치를 한 뒤 집으로 돌려 보냈다. 배재준 경사는 “만 16세 이상의 원동기운전면허 소지자만 탈 수 있지만, 관련 법이 미비해 15세 이하의 학생들이 면허증 없이도 공유 킥보드 앱('G쿠터' 등)을 설치할 수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대로변으로 나오는 자전거순찰대에 이번엔 배달 오토바이가 잡혔다. 보도를 주행한 뒤 횡단보도까지 건너려는 찰나였다. “원동기로 보도를 주행하셨습니다.” 범칙금 4만 원, 벌점 10점이 부과됐다. 남상현 자전거순찰팀장은 “단속 사실이 이 지역의 배달오토바이 ‘단톡방’을 타고 퍼질 텐데 그러면 이 일대 인도 위의 무법자들은 싹 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저녁 식사 즈음 길거리에 배달 오토바이는 늘어났지만, 이후 서너 대 정도만 자전거순찰대에 더 적발됐을 뿐이었다. 시민들은 순찰대에 조용히 미소를 보내거나 엄지를 들어 보이며 격려했다.


세종경찰청 자전거순찰팀의 인기는 전국구다. 자전거 활성화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제작한 순찰 동영상 조회수는 600만 뷰를 넘겼다. 이날도 중학생쯤 돼 보이는 학생들이 신호대기 중인 순찰대를 둘러싸고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순찰팀의 자전거는 전기모터로 기동했을 때 시속 25km까지 속도가 나는 하이브리드형 전기자전거다. 페달을 밟으면 더 빠른 속도로 주행할 수 있다. 그러나 과속, 신호위반 등 교통법규를 위반한 오토바이를 추격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 순찰 대원은 "맞은편에서 오는 오토바이 잡는 것만 해도 버겁다"고 귀띔했다. 자전거는 이동 수단이지 추격 용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조치원 등 원거리 지역 순찰 시에는 6대의 순찰자전거를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트레일러가 동원된다. 자전거와 트레일러는 세종시에서 지원했다.

지자체와 경찰의 협업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자 울산, 서울, 경기남부청 등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종시로부터는 '배달 오토바이들의 항의'를 전달 받았다. 그만큼 단속 효과가 크다는 이야기다. "오토바이 배달업체서 경찰이 단속을 너무 세게 해서 먹고살 수가 없다며 항의를 해왔어요. 이런 전화는 또 처음이라 알려드리는 거예요."(세종시) "오토바이들이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이야기네요."(세종경찰청)

기동순찰대는 이상동기 범죄와 강력범죄 예방 목적으로 지난 2월 전국 지방경찰청에 설치됐다. 지구대, 수사· 형사 ·교통 등 기능별, 관할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비정형적인 치안 수요를 감당하기 미흡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중 자전거순찰팀을 두고 있는 곳은 세종경찰청이 유일하다. 세종경찰청 관계자는 “기동순찰대 창설 후 세종지역 112신고 건수가 7% 이상 줄었고, 5대 범죄 발생 건수는 21%나 감소했다”며 “자전거순찰대의 역할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세종경찰청에 따르면 자전거순찰팀을 포함해 5개 팀으로 구성된 기동순찰대가 출범한 2월 16일부터 5월 14일까지, 약 3개월 동안 자전거순찰팀의 실적은 상당하다. 안전모 미착용, 오토바이의 보도 주행 등 기초질서 단속 건수는 기동순찰대 전체 742건 중 561건(76%)이 자전거순찰팀의 작품이다. 지명 수배자 검거 137명 중 44명(32%), 무면허운전 등 형사사건 입건 47건 중 33건(70%), 체납 차량의 번호판 영치 106건 중 46건(43%)이 자전거순찰팀의 실적이다.

세종경찰청 관계자는 “차량을 이용한 기존 순찰 방식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실적”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경찰청장이 자전거순찰팀 창설 공로로 유인호 세종시의회 운영위원장 등 관계자들에게 감사장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경찰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자전거순찰팀이지만, 국내 최초이다 보니 어려움도 있다. 고유 복장이 없는 점은 현장의 아쉬움이다. 한 순찰대원은 "자전거순찰자의 복제 규정이 없어 근무복을 자체적 구입하기도 했다"며 "근무조끼 등 자전거순찰자들에게 편한 근무복이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이용한 순찰, 치안 활동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 다른 지방경찰청, 경찰서에서도 시도된 바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유야무야 됐다. 세종경찰청 관계자는 "가장 큰 원인은 자전거 도로가 발달하지 않은 지역이었고, 전기자전거가 대중화되기 전이라 근무가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자전거를 이용한 순찰대는 세종경찰청이 최초다.

세종에서 자전거순찰대가 성공한 건 세종시가 '국내 최고 수준의 자전거 인프라'를 갖춘 도시이기 때문이다. 인구 39만 명의 도시에 자전거도로 길이는 400km로, 4월 말 기준 완공된 전체 도로(320km)보다 길다. 도시 면적 기준으로는 다른 도시의 4배 이상이다. 덕분에 세종시의 자전거 수송 분담률은 6% 수준으로 전국 평균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관계자는 "행복도시의 자전거 네트워크와 도로 대비 자전거도로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자전거순찰을 비롯해, 자전거 배달·택배, 자전거 출퇴근 등 활용도를 높여간다면 세종시는 세계적 친환경 자전거 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30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사업이 진행 중인 세종신도시(행복도시) 공정률은 60% 수준으로, 완공 시 자전거도로는 더 늘어나 500km에 육박하게 된다.






세종=글·사진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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