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던 넷플릭스의 화려한 반등... 그 뒤엔 '이 사람'이 있었다

입력
2024.05.21 04:30
18면
찐밸리 이야기<18> 부활하는 넷플릭스
구독자 수, 주가 등 증가세로 '반전' 
"공동 CEO 그레그 피터스가 주도한
계정 공유 금지 정책 등 주효" 평가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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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9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는 그해 1분기(1~3월) 구독자 수가 전 분기(2021년 4분기) 대비 약 20만 명 감소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구독자 수가 감소한 건 2011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었다. 구독자 수 감소는 매출 감소로 직결된다. 이날 시간 외 거래에서 넷플릭스 주가는 25%나 폭락했다. 시장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다음 분기 넷플릭스는 1분기보다 더 많은 96만여 명의 구독자를 잃었다. 아마존 프라임비디오·디즈니플러스·애플티비 등 다른 OTT와의 경쟁 심화, 인플레이션, '오징어게임' 같은 히트작 부재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최대 200만 명을 예상했던 시장에선 "불행 중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케이블 채널들을 고사시키고, '코드커팅'(Cord-Cutting·케이블 채널 가입을 해지하고 OTT로 옮겨가는 현상), '빈지워칭'(Binge-watching·시리즈 전편을 몰아서 보는 경향)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 낸 넷플릭스의 기록적인 성장세도 마침내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제2전성기 넷플릭스, '리더십' 주목

이랬던 넷플릭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구독자 수는 2022년 3분기부터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최근이었던 지난 4월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넷플릭스는 전 세계 구독자 수가 933만 명 증가해 2억6,960만 명에 이르렀다고 보고했다. 2022년 6월 바닥을 찍었던 넷플릭스의 주가는 코로나19 팬데믹(2021년 10월) 때 세운 최고 기록을 향해 가고 있다. 올해 상승률만 32%가 넘는다.

이 같은 부활에 넷플릭스의 리더십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는 유행이 지났다는 평가를 받는 공동 최고경영자(CEO) 체제를 5년째 유지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공동 CEO는 과거 오라클, 세일즈포스, 리서치인모션(블랙베리 전신) 같은 회사들이 시도했다가 포기한 모델"이라며 "큰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혼란을 야기하고 책임은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초 공동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공동 CEO직을 내려놓으며 자신의 후임으로 그레그 피터스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명했을 때도 일각에서는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테드 서랜도스·피터스 공동 CEO 체제는 놀라울 만큼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5년째 '공동 CEO' 체제, 왜?

다른 여러 기업에서 안착하지 못한 공동 CEO 체제가 넷플릭스에서 성공한 것은 넷플릭스란기업 자체의 특성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넷플릭스는 본래부터 기술과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유전자를 반씩 갖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기업이다. "스트리밍 기술을 가능하게 만든 넷플릭스의 엔지니어들은 '하우스 오브 카드'(넷플릭스의 첫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한 이들만큼이나 찬사를 받았다"고 WSJ는 전했다. 태생적인 특성 때문에 넷플릭스 안에서는 늘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가 견제와 균형을 이뤄왔고, 이 같은 분위기는 공동 CEO 체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토양이 됐다.

두 CEO 가운데 더 유명한 쪽은 서랜도스다. 그는 2020년부터 헤이스팅스와 함께 공동 CEO를 지내며 능력을 검증받아 왔다. 서랜도스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함께 휴가를 갈 만큼 유명인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자리에는 그가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하면 피터스는 알려진 게 거의 없는 '은둔의 경영자'에 가깝다. 현재 세계 미디어 업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임원 중 하나임에도,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의 넷플릭스가 있기까지는 피터스의 공이 작지 않았다. 특히 넷플릭스를 10여 년 만의 위기에서 구하는 데는 그가 서랜도스보다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 반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두 가지 조치가 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바로 △광고를 보는 대신 월 이용료를 적게 내는 신규 요금제의 출시와 △같이 사는 사람 외에는 계정을 공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의 도입이다.


피터스, 계정 공유 단속 모델 고안

2008년 넷플릭스에 입사한 피터스는 2015년 넷플릭스가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일본에 진출했을 때 일본 총괄을 지냈고, 2017년 최고제품책임자(CPO)로 승진했다. 그가 CPO가 된 직후 한 일 중 하나가 이용자들의 계정 공유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넷플릭스는 이용자끼리 계정을 공유하는 것을 별다른 문제로 보지 않았고, 외려 '입소문'이라 여기고 권장하기까지 했다. 굳이 이를 심각하게 보지 않아도 될 만큼 매 분기 신규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터스는 그러나 이것이 언젠가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봤다. 남의 계정을 같이 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신규 구독자를 유치하는 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2020년 1분기 동안 하루 16만 명씩 늘던 신규 구독자 수는 2021년 들어 급격히 둔화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당시 케이블TV 가입자는 약 1억 가구로 정점을 찍었다"며 "넷플릭스의 미국 구독자는 6,000만여 명이었고, 추가로 3,000만 명 정도가 다른 사람의 계정을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고 했다. 케이블TV 가입자를 '돈 내고 동영상을 볼 의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면, 넷플릭스가 앞으로 유치할 가능성이 있는 잠재 구독자는 최대 1,000만 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이에 넷플릭스 임원진 사이에서 계정 공유를 금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어떻게' 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그때 지금의 계정 공유 금지 모델을 주장한 게 피터스 당시 COO였다고 한다. 같은 집에 살지 않는 사람과 넷플릭스 계정을 공유하려면 매달 추가 요금(한국의 경우 5,000원)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처음엔 헤이스팅스조차도 이 모델이 성공적일지 회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계정 공유가 가장 널리 퍼져있던 칠레, 페루 등 남미 일부 국가에서 먼저 시험을 시작했고, 이후 이들 지역의 신규 구독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피터스가 제안한 모델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피터스는 2022년 광고 요금제의 출시를 주도하기도 했다. 광고 요금제는 계정 공유 단속과 함께 신규 구독자 확대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넷플릭스는 지난 15일 광고 요금제의 월 이용자 수가 4,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광고 요금제 출시 이후 새로 유입된 구독자들의 40%가 이 요금제를 택하고 있다고 넷플릭스는 전했다.



넷플릭스 향후 과제는...

구독자 감소세를 멈춰 세우는 데 성공한 두 CEO는 이제 또 다른 과제 앞에 서 있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계정 공유 단속의 효력이 다해가면서 신규 구독자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게 중요해지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이를 위한 넷플릭스의 전략은 크게 셋으로 압축된다. △요금제의 가격을 올리고 △게임을 만들고 △광고를 더 많이 파는 것이다. 이 가운데 게임 사업은 서랜도스보다 피터스가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진다. '오징어게임' 같은 넷플릭스의 지식재산권(IP)을 이용해 게임을 만들면 기존 시리즈 팬들이 많이 이용할 것이고, 이를 통해 가입자들을 더 오래 넷플릭스 플랫폼에 묶어둘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넷플릭스는 올해 초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와 독점 중계 계약을 맺었다. 2025년 1월부터 시작되는 10년 계약을 위해 넷플릭스는 50억 달러(약 6조7,000억 원) 이상을 지불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5일에는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미국프로풋볼(NFL) 경기를 올해부터 3년간 크리스마스에 중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스포츠 중계를 통해 넷플릭스는 무광고 요금제 구독자들에게도 광고를 노출할 수 있게 된다"며 "넷플릭스가 광고 수익 증대를 위해 다른 스포츠 중계권 확보 경쟁에 뛰어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라고 전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