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나주역에 내리시걸랑 곧장 택시 타고 ‘빛가람동 대방’ 가자고 하쇼잉. 질게(길게) 다 말씀하시지 말고요잉.”
참 착한 며느리다. 서울에 사는 누구는 시어머니 오는 게 싫어서 아파트 이름을 길게 알려준다던데.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2차 아파트에 사는 후배 아내 이야기다. 아파트 이름에 숨넘어간 사람 여럿이겠다. 무려 스물다섯 자. 이곳 주민 중 주소를 정확히 아는 이는 몇 명이나 될까. 초롱꽃마을6단지GTX운정역금강펜테리움센트럴파크, 이천증포3지구대원칸타빌2차더테라스 등도 만만찮다.
서울에 사는 누구는 센스 넘치는 택시기사 덕에(탓인가?) 시어머니와 오래오래 함께 지냈다는 우스개를 해야겠다. 아들 며느리 손주가 보고 싶어 서울에 온 시골 할머니.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아들네가 사는 아파트 이름을 말해야 하는데 꼬부랑말들이라 영 가물가물하다. “기사 양반, 전설의 고향을 지나 양재동에 있는 니미시벌아파트로 가유.” 잠시 생각에 빠진 택시기사. 예술의전당을 지나 리젠시빌 아파트에 할머니를 내려줬다.
아파트 이름이 문제다. 왜 하나같이 이상한 말로 길게 짓는 걸까. 휘황찬란해야 고급스럽고 멋진 집으로 보인다는 생각일 게다. 무너지고 뜯기고 냄새나고 물이 새는 하자투성이 아파트들도 이름만큼은 번쩍번쩍하다. 당최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세상이다.
부동산 기사를 볼 때마다 아파트 이름 확인하느라 숨이 차다. 그런데 요즘 한 매체에 등장하는 ‘본보기집’ 덕에 미소 짓게 된다. 모델하우스를 다듬은 말인데, 알기 쉽고 말맛도 좋다. 내친김에 집 관련 고운 우리말을 알아봐야겠다.
집알이는 언제 들어도 정겹다. 아는 이가 새로 집을 지었거나 이사했을 때 집 구경도 할 겸 찾아가 보는 일이다. 이사를 하고 나서 가족이나 친구, 이웃을 불러 집 구경을 시켜 주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집들이다. 집알이와 집들이는 주체가 다르니 잘 구분해 써야 한다. 집주인은 집들이를 하고, 손님은 집알이를 간다.
집가심도 고운 말이다. 꿈에 그리던 새집으로 이사를 가면 빛이 나도록 집 안 청소를 한다. 이게 바로 집가심이다. 입가심을 떠올리면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말이다. 입안을 상쾌하게 씻어내는 것은 입가심, 집 안을 깨끗이 씻어내는 청소는 집가심이다.
“한글로 씁시다. 10자 이내로 짧게 만듭시다.” 최근 서울시가 내놓은 아파트 작명법 가이드라인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겠다. 개나리, 무지개, 은하수, 어울림, 하늘채…. 얼마나 정겹고 편안한 이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