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집 잘 찾아오쇼잉

입력
2024.05.22 14:49
27면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엄니, 나주역에 내리시걸랑 곧장 택시 타고 ‘빛가람동 대방’ 가자고 하쇼잉. 질게(길게) 다 말씀하시지 말고요잉.”

참 착한 며느리다. 서울에 사는 누구는 시어머니 오는 게 싫어서 아파트 이름을 길게 알려준다던데.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2차 아파트에 사는 후배 아내 이야기다. 아파트 이름에 숨넘어간 사람 여럿이겠다. 무려 스물다섯 자. 이곳 주민 중 주소를 정확히 아는 이는 몇 명이나 될까. 초롱꽃마을6단지GTX운정역금강펜테리움센트럴파크, 이천증포3지구대원칸타빌2차더테라스 등도 만만찮다.

서울에 사는 누구는 센스 넘치는 택시기사 덕에(탓인가?) 시어머니와 오래오래 함께 지냈다는 우스개를 해야겠다. 아들 며느리 손주가 보고 싶어 서울에 온 시골 할머니.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아들네가 사는 아파트 이름을 말해야 하는데 꼬부랑말들이라 영 가물가물하다. “기사 양반, 전설의 고향을 지나 양재동에 있는 니미시벌아파트로 가유.” 잠시 생각에 빠진 택시기사. 예술의전당을 지나 리젠시빌 아파트에 할머니를 내려줬다.

아파트 이름이 문제다. 왜 하나같이 이상한 말로 길게 짓는 걸까. 휘황찬란해야 고급스럽고 멋진 집으로 보인다는 생각일 게다. 무너지고 뜯기고 냄새나고 물이 새는 하자투성이 아파트들도 이름만큼은 번쩍번쩍하다. 당최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세상이다.

부동산 기사를 볼 때마다 아파트 이름 확인하느라 숨이 차다. 그런데 요즘 한 매체에 등장하는 ‘본보기집’ 덕에 미소 짓게 된다. 모델하우스를 다듬은 말인데, 알기 쉽고 말맛도 좋다. 내친김에 집 관련 고운 우리말을 알아봐야겠다.

집알이는 언제 들어도 정겹다. 아는 이가 새로 집을 지었거나 이사했을 때 집 구경도 할 겸 찾아가 보는 일이다. 이사를 하고 나서 가족이나 친구, 이웃을 불러 집 구경을 시켜 주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집들이다. 집알이와 집들이는 주체가 다르니 잘 구분해 써야 한다. 집주인은 집들이를 하고, 손님은 집알이를 간다.

집가심도 고운 말이다. 꿈에 그리던 새집으로 이사를 가면 빛이 나도록 집 안 청소를 한다. 이게 바로 집가심이다. 입가심을 떠올리면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말이다. 입안을 상쾌하게 씻어내는 것은 입가심, 집 안을 깨끗이 씻어내는 청소는 집가심이다.

“한글로 씁시다. 10자 이내로 짧게 만듭시다.” 최근 서울시가 내놓은 아파트 작명법 가이드라인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겠다. 개나리, 무지개, 은하수, 어울림, 하늘채…. 얼마나 정겹고 편안한 이름인가.






노경아 교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