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흥분? 나의 머니"...'도파민 미디어 세상' 직격한 천우희의 '쇼'

입력
2024.05.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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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8부작 시리즈 '더 에이트 쇼' 
센 자극으로 관심 끌어야 생존, K콘텐츠 세상 풍자
"조회수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 녹여

'오징어게임'보다 노골적으로 보여준 계급 격차
"자본주의 사회, '공평 경쟁' 가능한가?" 질문

천우희 '광녀' 연기, SNS에 트렌드 검색어 등장
'음주운전' 배성우 출연..."OTT가 복귀 통로냐"


"장기 자랑을 할 때 (그 관심으로 구독자를 늘리는) 우리 삶을 보는 것 같았어요."

자신을 '틱톡(짧은 동영상 플랫폼)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한 관객은 넷플릭스 새 시리즈 '더 에이트 쇼'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다. 17일 정식 공개된 드라마에서 배우 박정민 등 8명의 게임 참가자는 콧김으로 리코더를 연주하며 장기 자랑을 한다. 게임 참가자들은 안간힘을 써 정체불명의 관찰자들의 흥미를 끌어 돈을 버는데, 여기서 드라마의 비극은 시작된다. 게임을 지속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징어게임'(2021)과 닮았다. 이렇게 입소문을 탄 '더 에이트 쇼'는 20일 기준(플릭스패트롤 집계) 넷플릭스 국내 시리즈 부문에서 1위를, 세계 순위에선 5위를 각각 차지했다.


'슈퍼챗', 코로 리코더를 분 이유

'더 에이트 쇼'는 폐쇄회로(CC)TV로 지켜보는 이들이 즐거우면 게임의 시간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쇼가 진행된다. 게임 시간이 길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라 참가자들은 점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관찰자들의 흥미를 끌려 한다. 최근 법원 앞에서 생방송을 하던 유튜버가 흉기에 찔려 그 비명이 온라인으로 생중계돼 충격을 준 현실 속 끔찍한 사건은 이 드라마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진다. 관찰자들이 게임 참가자들의 비극을 더 오래 즐기기 위해 게임 시간을 연장한다는 설정은 라이브 방송 구독자들이 유튜브 등에서 실시간으로 쏴주는 후원금 '슈퍼챗'을 연상케 한다.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수록 구독자와 조회수가 늘고 수익도 많아지는 요즘 미디어 세상의 참상을 '더 에이트 쇼'는 직격한다. 한재림 감독은 "'조회수를 많이 올리려면 어디까지 해야 되는 건가', '난 영화를 만들 때 관객들과 어디까지 소통해야 하나' 등의 고민을 담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 '관상'(2013)으로 주목받은 한 감독은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를 토대로 이 드라마의 대본을 새로 썼다.


폐기물 처리 문제로 보여준 '기후위기 불평등'

"한 달에 쥐꼬리만 한 월급? 그거 모아봤자 서울에 집 한 채라도 살 수 있냐. 우리 세대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는 미래가 없어."

드라마는 투자 사기를 당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건물 외벽 청소 등을 하다 양화대교에서 한강으로 뛰어들려는 30대 배진수(류준열)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삶의 낭떠러지에 선 이들이 익명의 초대를 받고 돈을 벌기 위해 게임에 참여하는 설정은 '오징어게임'과 비슷하지만 '더 에이트 쇼'엔 계급 격차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게임 공간은 8층 건물인데, 참가자들이 더 높은 층을 선택할수록 더 많은 시급을 받는다. 예컨대 8층을 고른 참가자가 1층을 고른 참가자보다 34배 많이 버는 식이다.

시급 격차로 게임의 불평등이 드러나고 음모가 속출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점점 뒤틀린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에서부터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공평한 경쟁이 과연 가능한가를 '더 에이트 쇼'는 게임의 방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봤다. 합숙으로 이뤄지는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폐기물 처리를 두고 갈등하는 것은 나라별 빈부 격차에 따른 '기후 위기 불평등'에 대한 풍자로도 읽힌다.



"비릿한 웃음 보여주고 싶었다"는 천우희

천우희는 '광녀' 캐릭터로 게임을 압도한다. 18일 'X'(옛 트위터)엔 '천우희 연기'가 실시간 트렌드 검색어로 등장했다. 극에서 예술가로 게임에 참가한 그는 "살다 보면 우리는 때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며 산다"며 "하지만 자기가 갖고 있는 욕망이나 본성을 거리낌 없이, 주위 눈치 보지 않고 보여주는 캐릭터의 순수함을 비릿한 웃음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적지 않아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시청자 반응은 일단 호의적이다. 해외 유명 콘텐츠 리뷰 사이트인 IMDB엔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와 공정성에 대해 독창적인 방식으로 질문을 던진다" 등의 글이 영어로 올라왔다. 2020년 음주 운전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배우 배성우가 이 드라마에서 약자 캐릭터로 동정심을 유발한다. 이를 두고 영향력이 커진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배우들의 빠른 복귀 통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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