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시장이 일본 외무장관을 만나 베를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놨다. 재독 한인 시민단체는 "베를린시가 일본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18일(현지시간) 베를린시에 따르면, 시는 16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카이 베그너 시장이 지난 1일 일본 도쿄를 방문해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장관과 회담했다고 밝혔다. 이 회담은 베를린과 도쿄의 자매결연 30주년을 맞아 성사됐다.
양측은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논의했다고 시는 전했다. 베그너 시장이 가미카와 장관에게 "변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는 것이다. 또한 시는 "베그너 시장은 더 이상 '일방적인 표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면서 "그가 지역구 및 연방 정부를 포함, 모든 사람과 접촉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베그너 시장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국 측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를 철거하는 문제를 두고 독일 정계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베를린 소녀상 설치 4주년을 앞두고 일본 정부의 외교전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 베를린 소녀상은 재독 한인단체 '코리아협의회'가 2020년 9월 독일 미테구(區) 공공부지에 세운 것으로, 일본은 끊임없이 베를린에 철거를 압박해왔다. 특히 같은 해 10월 설치 한 달 만에 베를린시와 미테구가 철거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명령은 한국 및 독일 시민사회 반발이 이어지며 철회됐지만, 이후 설치 기한 만료가 도래할 때마다 거센 논란이 일었다. 올해는 2022년 미테구의회가 내린 '2년 연장' 허가가 9월 28일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를 앞두고 베를린시가 이날 "이번엔 변화가 필요하다"고 발표한 것이다.
코리아협의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평화의 소녀상은 이미 분쟁 지역의 성폭력에 반대하는 보편적 기념물"이라며 "베그너 시장이 소녀상을 건립한 우리와 대화하지 않고 있다. 대화를 제안하면 기꺼이 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 전시 성폭력 추방의 날'인 내달 19일 시민사회단체들을 평화의 소녀상으로 초청해 밤샘 토론을 열겠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는 비관여 방침을 내세웠다. 이날 외교부는 "해외 소녀상 등의 설치는 해당 지역과 시민사회의 자발적 움직임에 따라 추진된 것으로,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한·일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