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우리나라의 여성차별철폐협약 국가보고서를 심의하면서 "여성가족부 폐지 정책을 철회할 의향이 없느냐"고 지적했다. 정부 대표단은 "여가부의 양성평등 업무나 기능을 축소하는 게 아니다"라며 기존 입장을 반복하며 해명했다.
16일 여가부에 따르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1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우리 정부가 제출한 정책 성과 국가보고서에 대한 심의를 마쳤다. 여성차별철폐협약은 1979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고, 한국은 40년 전인 1984년 가입했다. 189개국이 가입한 국제 인권조약으로, 가입국은 4년마다 여성 차별을 없애기 위한 정책적 성과를 보고서로 제출해야 한다. 정부는 여가부, 외교부, 법무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합동으로 대표단을 구성했고, 김기남 여가부 기획조정실장이 수석대표를 맡아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CEDAW 위원들은 우리 정부가 보고서를 통해 언급한 '성과' 이외의 현안에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여가부 폐지, 차별금지법 입법, 비동의 강간죄 도입,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 입법 등이다. 위원들은 여가부 폐지 시 실질적 성평등 정책 추진과 여성의 권리 강화에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라며 "여가부 폐지 계획을 철회할 의향이 있나"라고 물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발언한 점에 우려를 표명하며 임기 2년간 성평등 정책과 관련 예산이 축소된 점을 지적했다.
정부 대표단의 설명은 기존 입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여가부 폐지에 관해서는 "여가부의 양성평등 업무나 기능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사회보장 총괄부처(복지부)와 통합하는 내용"이라며 "양성평등 정책은 출산·양육, 건강, 소득보장,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정책 전반과 유기적으로 융합될 때 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해서는 "필요성에 공감하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관해선 "다양한 우려가 제기돼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지에서 심의를 참관한 국내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여성 차별 철폐에 성과도 의지도 보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1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CEDAW 제9차 한국정부 본심의 대응 NGO참가단'은 "장관도 없고, 진전도 없고, 의지도 없었다"고 논평을 내놨다. 2018년 직전 심의 때는 정현백 당시 여가부 장관이 직접 참석했던 데 비해, 이번엔 여가부 장관은 공석이고 장관 직무를 대행하는 신영숙 차관은 불참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