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오픈AI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적용한 챗봇 '챗GPT'를 공개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을 때도 지금처럼 모두가 AI 이야기만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챗GPT는 이미 개발되던 GPT의 버전 3을 업그레이드한 제품이었고, 이미지 쪽은 역시 오픈AI가 만든 생성형 AI '달E(Dall-E)'의 버전 2가 소소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다른 이미지 AI '미드저니'는 그해 9월 예술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AI 창작물의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냐'는 논쟁까지 만든 상태였다.
하지만 챗GPT는 달랐다. 명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느샌가 갑자기 전 세계 언론과 기업의 이목이 챗GPT에 쏠려 있었다. 그다음은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공포(FOMO)'가 정보기술(IT) 세계를 휘감았다. AI 연구를 이어오면서도 그 결과를 공개하는 데 극도로 조심하던 '빅테크'들도 "사실 우리도 하고 있었다"면서 줄줄이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후원을 얻은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스타덤에 올랐다. 다양한 업무 분야에 AI를 붙여 보겠다는 여러 기업의 발표가 쏟아졌다.
하지만 사실 현재 돈을 제대로 번 기업은 초거대 AI의 학습을 위해 필요한 고성능 컴퓨팅(HPC)의 독점 공급자, 엔비디아다. 여기에 조금 더한다면 TSMC,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업계 전반이다. 그 외에는 당장은 그저 더 많은 자료를 더 빨리 학습하기 위해 서버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AI 덕에 좋아졌다'고 체감할 만한 것은 아직 없다. 어느 챗봇이 성능을 강화했다고 해서 구경을 가면 거의 엇비슷한 환각 현상이 우리를 맞이하고, 이용자는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수십 개의 조건을 달아가면서 프롬프트와 씨름해야 한다. 생성형 AI의 결과물로 인한 데이터 공해도 심각하다. AI 생성 이미지를 실어 놓은 조악한 품질의 게임과 챗봇이 앱스토어를 뒤덮은 채 소액 결제를 유도하고 광고를 쏟아내고 있다.
챗GPT 이후 체감하는 AI 열풍의 상당 부분은 마케팅의 산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갤럭시 AI'와 동반 공개되면서 우리에게 친숙해진 구글의 '서클 투 서치'는 이전에도 있었던 '구글 이미지 검색'의 과정을 크게 단축한 인터페이스 개선에 가깝다. 물론 매우 편리해졌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없던 뭔가가 나온 건 아니었다.
'거품'이 터진 전례는 많다. 멀게는 20세기 말 '닷컴 버블'이 있고 가깝게는 '크립토 버블'과 '메타버스 버블'이 있다. 물론 닷컴 버블은 터졌으되 우리의 삶을 바꿨다. 암호화폐와 메타버스는 많은 종사자들이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챗GPT' 같은 존재가 나타나 대반전 드라마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수없이 등장하던 블록체인과 메타버스의 이름을 단 프로젝트들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 것 또한 엄연히 사실이다.
한국의 기업에 정부까지 어느 순간부터 AI의 발전을 지상 과제로 내걸고 매달리고 있다. 급기야 저성장·고금리에 저출생·고령화까지 AI만 발전시키면 극복할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AI의 가능성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무 앞서가는 과대광고도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