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비 제작비만 5억, 앨범에 200억 써도 실패...K팝 '부익부 빈익빈' 심화

입력
2024.05.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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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뮤직비디오 제작비 크게 증가...A급 평균 5억 수준
세트 제작비 증가에 인건비, 각종 비용 오르며 제작비 상승
신인 그룹 제작에 100억 원 써도 관심 끌기 어려워져
중대형 K팝 기획사 내서도 '부익부 빈익빈' 가속화


"5, 6년 전만 해도 1억5,000만~2억 원이면 어느 정도 괜찮은 뮤직비디오를 찍을 수 있었는데 요즘엔 4억~5억 원, 신경을 좀 썼다 싶으면 8억, 10억까지도 듭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기자들에게 '(하이브처럼) 대기업 보도자료만 받아쓰지 말고 (어도어처럼) 가난한 애들 것도 써달라'고 했는데, 정말 가난한 회사는 뉴진스처럼 신인 그룹 데뷔에 뮤직비디오 3개를 제작할 여력이 없어요."

10년 가까이 K팝 그룹 제작에 참여해 온 이모씨는 최근 K팝 그룹 제작비와 관련해 언급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요즘은 데뷔부터 해외 시장까지 염두에 둬야 하니 완성도 높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것은 필수가 됐다"며 "한 앨범당 뮤직비디오 1편 찍어서는 여러 편 찍는 그룹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K팝 기획사 제작 부서의 김모씨는 "코로나19 팬데믹 직전과 비교하면 뮤직비디오 제작비가 30% 이상 오른 듯하다"고 말했다.

뮤직비디오 제작비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세트 자재비와 인건비가 늘어난 데다 화려한 영상을 위해 세트의 수와 컴퓨터그래픽 비중을 늘리고, 보조출연자를 다수 기용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팬데믹 이전에 세트 하나당 3,000만 원 정도가 들었다면 이젠 비슷한 수준에 5,000만 원가량이 든다"면서 "다채로운 연출을 위해 세트를 5, 6개 쓰면 최소 5억 원 이상은 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여자)아이들의 리더 전소연은 '슈퍼레이디' 뮤직비디오 제작에 11억 원이 투입됐다고 밝혔다.


뮤직비디오 등 홍보 영상 제작비 크게 증가...신인 그룹 제작에 100억원 이상 들어

K팝 시장이 커지면서 앨범 제작비가 급등하고 있다. 음원 제작과 CD 제작 및 유통에 드는 비용도 올랐지만 그보다 더 크게 오른 부문은 홍보 비용이다. 뮤직비디오 외에도 영상물 제작 편수가 늘었다. 멤버들이 참여하는 자체 예능, 틱톡 업로드용 영상 등이 필수 홍보 수단이 됐다. 트레이닝 및 관리비, 인건비, 연습실 및 숙소 임차료 등도 팬데믹 이전 대비 30~50%가량 올랐다.

제작비가 급등하다 보니 대형 기획사의 지원을 받거나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홍보 효과를 얻지 못하는 신인 그룹이 성공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업계에선 10년 전만 해도 30억 원 정도면 신인 그룹을 데뷔시킬 수 있었지만 최근엔 최소 100억 원 정도는 있어야 시도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중소 규모의 K팝 기획사 대표는 "인지도가 없는 신인 그룹의 경우 싱글∙미니앨범 4장까지는 손실을 감수하고 제작해야 하는데 제작비가 급등하면서 자본금 100억 원을 들고 시작해도 4번째 음반까지 버티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소규모 기획사에겐 TV 음악 프로그램 출연도 부담이다. 지난해 계약 만료와 함께 사실상 해체한 보이그룹 빅톤 멤버 도한세는 최근 팬들과 소통 플랫폼인 버블을 통해 "일주일간 음악 방송 도는 데 1,000만 원에서 많으면 2,000만 원도 드는데 나는 출연 당시 5만 원을 받았다"며 "정산 받는 아이돌 그룹은 거의 없으며 K팝 팬이 아닌 대중까지 아는 몇 팀 외엔 모두 빚만 쌓다 계약이 끝난다"고 말했다.

유명 기획사 소속이거나 TV 오디션 프로그램 통하지 않으면 관심 끌기 어려워져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하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중견 패션기업 F&F의 자회사 F&F엔터테인먼트는 약 100억 원을 투입해 SBS와 공동 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 '유니버스 티켓'을 통해 걸그룹 유니스를 데뷔시켰는데 아직까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가수 임창정이 200여억 원을 들여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걸그룹 미미로즈도 부진한 활동 끝에 지난해 말 데뷔 1년여 만에 소속사와 계약을 종료했다.

중대형 K팝 기획사들 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1위 그룹인 하이브와 SM∙JYP∙YG엔터테인먼트의 매출액이 2019년 1,000억 원대~6,000억 원대에서 불과 4년 만에 5,000억 원대~2조 원 대로 성장했다. 반면 2위 그룹인 스타쉽∙큐브∙RBW∙KQ∙FNC엔터테인먼트의 매출은 일부 회사가 같은 기간 3, 4배의 성장을 했는데도 2,000억 원대에 진입한 스타쉽을 제외하면 1,000억 원대 이하에 머물고 있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는 "제작비 규모가 커지고 K팝 시장이 대형 기획사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신규 제작사나 군소 제작사가 성공을 거두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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