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출산이 보편화될 9년 뒤 한국에선 어떤 문제가 생길까

입력
2024.05.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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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미래 사회 화두 가늠해 보는 연극 '거의 인간'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로봇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다. 1920년 발표된 희곡은 기계 문명을 과신한 인간들이 유토피아를 꿈꾸며 로봇을 개발하고 로봇의 반란으로 공멸의 위기를 맞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사람들은 차페크의 창조물인 로봇을 현실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예술적 상상력은 종종 첨단 기술 문명의 발전을 앞질러 미래를 만나게 한다. 국립정동극장의 창작ing 프로그램으로 선보이는 극단 미인의 '거의 인간'은 인공지능(AI) 작가의 저작권과 인공 출산 등 근미래에 화두가 될 만한 주제를 다룬다.

작품의 배경은 불과 9년 앞으로 다가온 2033년. 9년은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생성형 AI의 등장과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한다면 9년 후의 사회 예측도 쉽지 않다. 연극은 지금과 살아가는 풍경은 비슷하면서도 또 완전히 다른 '거의 인간'의 시대를 그린다. 장기 이식에 의한 생명 연장이 보편화되고, 무용 공연이 사라진 사회다. 무용가들은 완벽한 춤을 기록하기 위해 연습할 뿐 관객과 만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AI가 소설을 쓴 지 오래됐고, 검사의 영역을 기웃거리고 있으며, 심지어 발레 전수자를 심사한다.

'거의 인간'은 창작진의 깊이 있는 리서치를 근거로 미래 사회를 구체적으로 구현한다. 딥페이크의 폐해를 막기 위해 AI는 실존하는 인간의 목소리나 모습을 모방할 수 없다는 법규를 만든다. 인공 출산이 일반화하면서 생명 경시를 우려해 낙태 금지법을 부활시킨다. 인공 출산은 결혼한 관계에서만 가능하고, 인공 출산을 선택한 산모는 3주 안에 반드시 수정된 태아와 대면해야 한다. 기술 발전으로 변화된 세상을 세심하게 상상하는 만큼 그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규제도 꼼꼼하게 마련한다.

AI 작가에게 동료애 느끼는 출판 기획자

충분히 개연성 있는 가상세계 속에서 인공 자궁으로 출산을 시도하는 이재영(강해진)과, AI 작가의 멘토로 소설 창작 작업을 돕는 김수현(성여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재영의 남편인 정인수(안병찬)는 목사이면서도 전통적 종교가 거부하는 인공 출산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이는 인물이다. "비닐팩에서 자란 아이가 인성이 제대로 자라겠냐"는 재영의 시어머니(김정은)의 말에서 드러나듯 아직 기성세대는 인공 출산에 거부감을 보이지만 의학 시스템은 안정적이다. 인공 자궁 안에 있는 동안 엄마의 심장박동을 녹음해 들려주고, 안정적 성장을 체크하면서 필요 영양분을 제때 공급해 건강한 아이로 키울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산모가 임신 기간 활동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인공 출산을 주저하던 재영은 수정된 인공 자궁 속 아이를 보면서 처음 아이의 심장박동을 들을 때와 같은 감동을 받는다. 기술 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이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수현은 출판사에서 AI 작가와 씨름하며 소설을 만들어 온 기획자다. 그가 담당했던 AI 작가 제이원은 협업 과정에서 좋은 성과물을 내지 못하지만, 방치된 기간 동안 배운 것을 바탕으로 많은 양의 소설을 써낸다. AI 작가 지아는 제이원이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몇 편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후 매너리즘에 빠진다. 지아의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은퇴한 수현이 긴급 투입된다. 수현은 지아와의 작업을 통해 글쓰기의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AI인 지아에게 동료애를 느낀다. 그러나 편집장 권복희(김정은)는 수현과 지아의 작업을 동의 없이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개발한다.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AI 작가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수현은 소송을 제기한다.

사면이 영상 패널로 둘러싸인 심플한 무대로 가상세계를 표현했다. 지아는 스스로 목소리와 얼굴을 바꿀 수 있는 영상 속 인물로 표현된다. AI 작가 지아는 목표가 분명하고 스마트하면서도 이기적이기도 한 캐릭터다. 지아와 수현이 AI와 인간의 차이에 대해 나누는 대화나, 서로 협의하면서 소설을 완성해 가는 장면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재영은 인공 출산에 성공했을까, 수현은 저작권 소송에서 승소했을까. 작품은 재영과 수현의 근미래 여행을 통해 미래에 맞닥뜨릴 중요한 화두를 미리 만나보게 한다. '거의 인간'은 22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한다.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