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이 현실로? 일본 SNS로 퍼지는 '지진 예언' 공포

입력
2024.05.20 04:30
14면
애니 '스즈메의 문단속' 지진 순서와 현실 일치
"고베·도쿄에 큰 지진 오나" 일본 내 불안 확산
"재해 시 불안 SNS로 해소... 허위 정보 조심을"

"스즈메의 예언이 맞다면 다음은 고베, 그다음은 도쿄 오차노미즈?"

요즘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2022년 11월 개봉해 1,1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한국(2023년 3월 개봉)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 중 처음으로 누적 관객 500만 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한 작품이다.

일본에서 개봉한 지 1년 6개월이나 지났고, 재개봉하지도 않은 이 작품이 최근 일본 엑스(X),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회자되고 있다. SNS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스즈메의 예언'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진 예언 이야기에 일본 사회가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지난달 지진 2회에 화들짝 놀란 일본

스즈메의 문단속은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에 사는 여고생 스즈메가 우연히 도쿄 청년 소타와 만나 대지진을 막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다. 이야기를 이끄는 줄거리는 일본 각지에서 일어나는 대지진으로, 큰 지진을 경험하곤 하는 일본인의 상처를 잘 그려내 공감대를 얻었다.

그러나 재해 속 치유를 이야기하는 작품 주제와는 달리 스즈메의 예언은 공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발단은 SNS다. 스즈메의 예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중순부터다. 심상치 않은 곳에서 일어난 지진이 촉매제였다.

지난달 8일 오전 10시 25분쯤 일본 미야자키현 니치난시에서 진도 5약의 지진이 관측됐다. 그리고 9일 뒤인 같은 달 17일 오후 11시 14분에는 에히메현 오즈시에서 진도 5약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도는 사람이 체감하는 흔들리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으로, 일본 기상청은 10단계로 구분한다. 5약은 6번째 단계로, 공포감을 느끼고 물건을 붙잡아야 한다고 느끼는 수준이다. 그렇게 피해가 큰 지진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달 17일 발생한 에히메현 지진 이후 SNS에서는 난리가 났다. 애니메이션 속 지진 발생 순서 및 지역이 현실과 정확히 맞아떨어져서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대지진이 5번 등장한다. 스즈메가 사는 마을인 미야자키현 니치난시에서 맨 처음 발생하고, 동갑내기 친구 지카를 만난 에히메현 오즈시에서 두 번째 대지진이 일어난다. 작품에서는 이후 고베시, 도쿄 오차노미즈, 미야기현 게센누마시에서 차례로 대지진이 일어난다.

스즈메의 문단속 순서대로라면 다음 큰 지진이 일어나는 장소는 고베, 그다음은 오차노미즈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이에 "다음은 고베인가, 혹시 모르니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차노미즈에서 대형 지진이 일어날지 모른다. 도쿄에 대지진이라니"라는 글을 SNS에서 퍼 나르고 있다. 스즈메의 예언이 퍼지면서 "구름 모양이 미미즈 같다. 진짜 지진이 오는 건가"라는 내용의 글과 사진도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작품에 나오는 '미미즈(일본어로 지렁이)'는 재앙의 전조로, 검은 지렁이 모습을 하고 있다.

영화와 실제 지진이 2번밖에 일치하지 않았는데도 일본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들이 느끼는 지진의 공포가 남달라서다. 일본에서는 정신질환을 나타내는 '지진 공포증', '지진 불안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지진 공포증은 불안 장애의 한 종류로, 지진으로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지진을 무서워하거나, 혼자 있는 것을 불안해해 호흡 곤란이나 통증 등 이상 반응으로 나타난다.

지진 공포증, 지진 불안증이라는 표현이 일본 사회에서 다시 퍼진 것은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규모 9의 동일본대지진 이후다. 매년 3월 11일이 가까워지면 두근거림이 심해지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일본인들이 있을 정도다.

일본에서는 일본인들이 느끼는 지진의 공포를 수치화하는 여론조사를 벌이기도 한다. 가장 불안한 자연재해를 꼽아달라고 하면 지진은 늘 1위를 차지한다. 일본 전국공제농업협동조합연합회(JA공제)가 지난해 9월 전국 10~70대 남녀 960명을 대상으로 '방재에 관한 인식 및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6%가 지진을 가장 무서운 자연재해로 꼽았다. '수년 안에 대지진이 올 것 같다'고 답한 응답자도 80.6%나 됐다.

지진 후 가짜뉴스에 '외국인 혐오'만

일본의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SNS에서 지진 관련 정보를 올릴 때 주의를 당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SNS를 통해 불안감을 조장하는 허위 정보나 가짜뉴스가 확산할 가능성이 크니 조심하자는 것이다. 때로는 가짜뉴스로 2차, 3차 피해자가 나올 수 있어서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지난 1월 1일 발생한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지진 때 SNS를 통해 가짜뉴스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노토지진이 발생한 지 사흘째인 1월 3일 이시카와현 지역 주민 사이에서는 메신저 라인 단체 대화방을 통해 '버스를 타고 온 중국인이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글이 빠르게 확산됐다. 그러나 이는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쓴 허위 정보였다. 동네 주민 사이에서만 퍼지고 끝날 줄 알았지만, 주민 한 명이 X에 이 글을 올리면서 허위 정보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해당 글을 최초 유포한 사람은 지역 소방단(지역 봉사단체) 분단장이었다. 분단장은 "중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물건을 훔치고 다니는 것 같은데 이 글을 빨리 퍼트려 달라"는 한 중년 여성의 말만 듣고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글을 올린 것이다. 분단장은 아사히에 "지역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에게 서둘러 알려야겠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가짜뉴스를 퍼트릴 목적은 아니었지만, 분단장의 글로 인해 지역 주민들은 중국인에 대한 공포와 불만을 느끼게 됐고, 외국인은 순식간에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분단장이 서둘러 글을 올렸듯 대형 재난·재해가 발생하면 유독 가짜뉴스, 허위 정보가 퍼지기 쉽다. 폐쇄적 환경으로 불안감이 높아져서다. 집을 떠나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커지는데, 통신 상황이 좋지 않아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공포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JA공제가 지난해 9월 조사에서 '지금 대지진이 일어나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나'라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48.8%는 'SNS 정보에 현혹될 것 같다'고 답했다.

재해 때 '잠재적 불안' 더 부추기는 SNS

재해 정보 전문가인 나카모리 히로미치 니혼대 교수는 아사히에 "원인은 사람들 안에 있는 잠재적인 불안과 정보 부족"이라며 "불안한 정보나 뉴스를 듣게 되면 다른 사람과 공유해 안도감을 얻으려는 경향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세키야 나오야 도쿄대 재해사회학과 교수도 도쿄신문에 "재해 때 유언비어가 확산하는 이유는 발신자나 유포자들이 불안과 분노를 느끼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심리 상태도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보를 전달하고 싶다는 의도와 달리 SNS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달로 가짜뉴스는 더 빨리 확산하게 됐다. 노토지진 발생 직후 일본 SNS에서는 쓰나미로 자동차가 떠내려가는 동영상이 올라왔는데, 하루 만에 조회수가 60만 건이나 올라갔다. 하지만 이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영상으로, 노토반도 지진과 무관했다.

전문가들은 재난·재해 시 SNS 정보에 의존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재해 시 확산하기 쉬운 가짜뉴스로는 크게 △미래 재해 예언 △재해로 인한 피해 정보 △구조 요청 등 3가지다. 때문에 정확한 정보는 TV나 라디오, 신문, 정부 발표를 통해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쿄신문은 재해 시 SNS에서 도는 구조 요청 게시글은 허위 정보가 많다고 지적하며 "노토반도 지진이 일어난 직후 SNS에는 주소나 이름을 적은 구조 요청 글이 넘쳤지만 실제 구조 활동으로 이어진 일은 없었다"고 짚었다. 세키야 교수는 "평소 SNS는 정확한 정보를 주고받는 플랫폼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재해 때는 현혹되기 쉬운 만큼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류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