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편두통 예방 약’ 출시됐지만 건강보험 적용 기준 까다로워…

입력
2024.05.13 23:03
[건강이 최고] 편두통 유병률 6~11.5%로 높지만 기존 치료제 효과 낮아

‘머리 속에서 심장이 뛰는 느낌’ ‘딱따구리가 머리를 쪼는 느낌’ 등등. 이 같은 두통이 한 달에 15일 이상, 편두통이 8일 이상 지속되면 ‘만성 편두통’으로 진단한다. ‘두통의 왕’으로 불리는 편두통의 국내 유병률은 6~11.5%인데, 여성은 40대, 남성은 20대에서 많이 발생한다. 편두통 환자의 70%는 가족력이 있는 걸로 보고된다.

한국애브비는 먹는 편두통 예방 약 ‘아큅타(성분명 아토제판트)’를 지난해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만성·삽화성 편두통 예방 치료에 국내 유일하게 허가를 받았다. 아큅타는 1일 1회 경구용 GCRP 수용체 길항제다. 하지만 아큅타의 건강보험 적용 기준이 까다로워 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주민경 대한두통학회 회장(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은 최근 열린 한국애브비의 아큅타 국내 출시 기념 간담회에서 “국내 편두통 유병률은 6~11.5%로 높지만 기존 치료제로 치료받아도 내약성과 효과 만족도가 낮은 편”이라며 “(보건당국은) 아큅타에 대해 현실적인 건강보험 적용 조건을 정해 많은 편두통 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주민경 회장은 “편두통은 잦은 발작을 특징으로 하는 고통스럽고 복잡한 만성질환”이라며 “팔다리가 잘린 것만 장애가 아니라 일을 하지 못하는 것도 장애”라고 했다. 죽는 병은 아니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병으로, 출산보다 더한 고통을 일으키며 장애 부담도 하반신 마비나 무릎 절단 환자보다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편두통 환자의 80%는 극심한 고통으로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44%의 환자가 죄책감을 느끼고, 한 달에 평균 4.6일간 결근을 한다는 것이 주민경 회장의 설명이다.

편두통 치료는 급성기와 예방 치료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예방 치료에서는 항우울제, 항경련제, 항고혈압제 등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편두통을 특정한 약물이 아닌 만큼 치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최근에는 CGRP 단일 클론 항체가 개발됐지만 주사제 거부감을 비롯해 50~60%는 이상반응으로 인해 치료 6개월 이내 치료를 중단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먹는 편두통 예방 약 아큅타의 국내 허가는 환자들에게 적지 않은 희망이 되고 있다. 아큅타는 만성 편두통 및 삽화성(揷畵性) 편두통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3상 임상, PROGRESS와 ADVANCE 연구를 통해 월 평균 편두통 일수(mean MMD)와 급성 약물 사용 일수를 줄이는 효과를 입증했다.

먼저 만성 편두통 환자를 대상으로 한 PROGRESS 연구에서는 연구 시작 후 12주 시점에 월 평균 편두통 일수가 아큅타군에서 6.9일 감소, 위약군의 5.1일보다 더 많이 줄었다.

또한 월 평균 편두통 일수가 최소한 50% 이상 감소한 환자 비율은 아큅타군이 41%로 위약군의 26%를 크게 웃돌았다. 월 평균 급성 두통 약물 사용 일수도 아큅타군(6.2일 감소)에서 위약군(4.1일 감소)보다 감소했다.

삽화성 편두통 환자를 대상으로 한 ADVANCE 연구에서도 연구 시작 시점 대비 투여 12주차 월 평균 편두통 일수가 아큅타군에서 4.2일로 위약군의 2.5일보다 더 많이 줄었다.

또한, 아큅타군은 투여 1일 차에 환자의 87.7%에서 편두통이 발생하지 않아 급성기 치료제로서도 가능성을 나타냈다. 이를 토대로 현재 급성 편두통 치료제 사용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다.

덧붙여 아큅타는 이전에 예방 치료를 한 적이 있는 환자의 삽화성 편두통 예방 치료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기존 2~4가지 계열의 경구용 예방 치료에 실패한 삽화성 편두통 환자를 대상으로 한 ELEVATE 연구에서 아큅타 60㎎을 1일 1회 경구 투여한 환자는 12주 투여 기간 월 평균 편두통 일수가 연구 시점 대비 4.2일 감소한 반면 위약군에서는 1.9일에 그쳤다.

아큅타는 PROGRESS, ADVENCE 등 2가지 연구에서 12주 치료 기간에 위약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월평균 편두통 일수 감소 성과를 거둬 1차 목표를 달성했다.

김병건 노원을지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아큅타는 먹는 약이라는 장점과 짧은 반감기 등 다양한 이점을 통해 편두통 환자 불편을 해소하는 새로운 치료 옵션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큅타가 경구용 CGRP 수용체 길항제로 효능과 안전성을 보이며 국내 출시했지만 편두통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려면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진료 현장에서는 앞서 시장에 진입한 CGRP 계열 주사제 건강보험 적용 기준이 까다롭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적용 기준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CGRP 계열 주사제인 한국릴리 엠겔러티(갈카네주맙)·한독 아조비(프레마네주맙)를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최소한 1년 이상 편두통 병력 △투여 전 최소 6개월 이상 월 두통 일수가 15일 이상이면서, 이 중 한 달에 최소한 8일 이상 편두통형 두통 △투여 시작 전 편두통 장애 척도(MIDAS) 21점 이상 또는 두통 영향 검사(HIT-6) 60점 이상 △최근 1년 이내 3종 이상의 편두통 예방 약의 치료 실패 등 복잡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특히 건강보험 적용 기준에 따라 처방돼도 최대 투여 기간은 12개월이고, 투여 시작 후 3개월마다 반응 평가·두통 일지 등을 진행해야 한다. 이 때문에 까다로운 건강보험 적용 기준 때문에 비급여로 처방받겠다는 환자가 적지 않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