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기행을 일삼아온 신비주의 작가 크리스토프 뷔헬이 올해도 베니스 비엔날레를 저격했다. 15세기부터 이탈리아에서 파생했던 '종교 전당포'를 모티브로 한 그의 작품은 영리를 추구하는 예술 시장을 한껏 조롱하고 있다.
1895년부터 2년마다 개최되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미술의 올림픽'이다. 전 세계의 미술계 큰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곳에서 동시대 미술의 지평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의 흥행은 작품 가격의 보증수표를 의미한다. 논란의 중심이 되는 작품일수록, 작가는 더 유명해지고 이는 바로 작품 가격과 직결된다. 뷔헬은 2015년 비엔날레에서 베니스 가톨릭 성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해서 전시했으며 2019년에는 2015년 리비아 내전 당시 난민을 태운 채 난파해서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했던 어선을 인양, 베네치아로 가져와 전시했었다. 이러한 예술적 기행에 대해 도가 지나쳤다고 분노하는 이 또한 적지 않았다.
그가 올해는 어떤 전시를 했을까? 뷔헬은 프라다미술관을 이탈리아의 '몬테 디 피아타(monte di Pietà)'로 둔갑시켰다. 몬테 디 피아타는 일종의 '종교 전당포'였다. 15세기쯤 상업이 발달한 이탈리아는 고리대금업자가 많았다. 종교 권력은 이 사태를 해결코자 종교 전당포를 설립한다. 돈과 이자를 받는 금융기관이지만 교황청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 기관은 정부나 개인으로부터 돈을 기탁받고, 빈자들에게 연 5% 내외의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었다. 차용인은 귀중품을 담보로 제공할 수 있었다. 뷔헬은 당시 운영됐던 아카이브 속 다양한 재산 목록들을 기반으로, 전시 공간을 채웠다. 이러한 전시물을 통해서 뷔헬은 물질주의가 팽배한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미술관 입구에는 금과 다이아몬드를 맡기면 대출 해 준다는 광고를 붙여놨다. 그리고 방마다 기상천외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휠체어, 콘돔, 슬롯머신, 인형, 옷, 자전거, 총 등이다. 뷔헬의 지난 작품 다이아몬드 메이커(2000)도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팔리지 않은 자신의 작품을 몽땅 녹여서, 자신 신체 분비물에서 나온 DNA를 합성해서 시리즈로 만든 '인조 다이아몬드'라는 작품이다.
과연 그 의도는 뭘까? 프라다미술관 건물의 과거에서 그 힌트를 발견하게 된다. 프라다미술관 건물 이름은 '코르네르 여왕의 궁'(Ca Corner della Regina)이었다. 코르네르 집안은 12세기부터 베네치아 상인 출신이었다. 1454년 카테리나 코르네르는 사이프러스 여왕이 된다. 이 궁은 1800년 교황 비오 7세의 소유가 되고, 1834~1969년까지 베니스의 '몬테 디 피아타'가 열리기도 했다. 즉, 상인의 손에서 종교 권력의 건물로 그리고 다시 2011년에는 상업의 '끝판 왕'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 집안의 건물이 됐다. 이후 프라다미술관은 문화 공간으로 브랜드 소프트 파워의 요람이 되어 왔다. 뷔헬은 금권이 인간 사회에 끼치는 영향, 즉 돈이 인간 사회의 뿌리이자 정치적, 문화적 권력이 행사되는 주요 수단이라는 개념을 탐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전시실 한 구석 방에는, 이스라엘산 시멘트 봉지, 물담배 등이 버려진 부엌이 있다. 그 벽에는 아랍어가 여기 저기 쓰여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가자지구의 실시간 영상이 스트리밍되고 있다. 관객들은 수 많은 어린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이런 상황을 전시하는 건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 고안된 불필요한 선동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습이 바로 현재의 미술 세계가 처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물음을 마주하게 된다. 문제적 전시를 보고, 그리고 베니스의 광장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그 다음 봐야 할 전시를 이야기하는 우리도 비슷한 모습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