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돌 아이가 1분 사이 사라졌다… 43년의 기다림 "살아만 있어다오"

입력
2024.05.18 04:30
15면
<80> 두 살배기 카트리스 리 실종사건
두 번째 생일 엄마 따라 슈퍼마켓 갔다 사라져
흔적 없어·용의자 무혐의… 포기 않는 가족들
"납치돼 진짜 이름 모른 채 어딘가 살아 있다"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봄직한 가장 끔찍한 상상. 눈앞의 아이가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1981년 11월 28일, 카트리스 리의 두 번째 생일. 카트리스는 엄마 샤론의 품에 안겨 이모 웬디와 함께 독일(당시 서독) 중서부 도시 파더보른 근처 영국 육해공군 군인회(NAAFI) 슈퍼마켓에 갔다. 카트리스의 가족은 영국 왕실기병대 소속으로 독일에 주둔하던 아빠 리처드를 따라 파더보른으로 이주해 살고 있었다.

그날따라 카트리스는 쇼핑카트에 타지 않겠다고 보챘다. 크리스마스 전 마지막 군 월급날이라 마트 안은 크게 붐볐다. 계산 직전 샤론은 파티에 쓸 감자칩을 담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카트리스랑 여기 잠깐 있어." 샤론은 카트리스와 웬디를 계산대에 두고 감자칩 코너로 뛰어갔다. 1분도 채 안 된 짧은 시간. 돌아왔을 때 카트리스는 없었다. 43년간의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두 번째 생일날, 잠깐 한눈판 새 사라진 아이

당시 카트리스는 엄마 뒤를 따라갔다. "카트리스가 쫓아가고 있어." 웬디는 샤론의 등에 대고 외쳤다. 샤론은 듣지 못했다. 웬디는 카트리스가 엄마와 만나 함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틀렸다. 잠깐 한눈판 사이 아이는 실종됐다.

같은 시간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리처드는 점점 불안해졌다. "30분 정도 차 옆에 서 있었어요. 금방이면 된다고 했는데…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곧바로 '군인 모드'가 발동됐다. 슈퍼마켓에 재빨리 경보를 울리고, 동료 군인들과 수색에 나섰지만 카트리스는 없었다.

7세였던 카트리스의 언니 너태샤는 삼촌과 함께 집에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또렷이 남아있다.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던 엄마의 비명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요." 너태샤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고 악몽을 꾸게 된다. "아무리 내 잘못이 아니라고 되뇌어도 그날 함께 가지 않았던 데 죄책감이 듭니다."

카트리스 실종 후 리처드·샤론 부부는 더 이상 자녀를 갖지 않기로 했다. 아픔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1989년 갈라섰다.

인근 강 수색에 골든타임 허비한 군경찰

카트리스는 1979년 11월 28일 독일 린텔른의 영국군 병원에서 태어났다. 왼쪽 눈에 두 번의 수술이 필요한 안질환(사시)을 갖고 있었다. 곱슬거리는 연한 갈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가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였다. 실종 당시 어깨에 프릴이 달린 푸른 계열 타탄 체크 원피스 위에 청록색 더플 코트를 걸치고, 빨간색 웰링턴 부츠를 신고 있었다.

영국 왕립 군경찰(RMP)이 카트리스 찾기에 나섰다. 다만 실종 현장이 독일인 거주지에 있었기 때문에 현지 경찰의 협조가 필요했다. 초동 수사는 카트리스가 인근 리페강에 빠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이뤄졌다. 경찰은 강을 따라 가가호호 수색도 했지만 카트리스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길을 잃고 헤매다 인근 강에 빠져 익사했을 것이라는 경찰 추정과 달리 가족들은 처음부터 납치를 의심했다. 리처드는 "카트리스는 목욕하는 것조차 싫어할 정도로 물을 싫어했다"며 "누군가 카트리스의 손을 잡고 슈퍼마켓에서 나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납치로 수사 방향을 돌렸을 땐 골든타임이 이미 지난 후였다. 슈퍼마켓과 연결된 도로를 차단하고, 안에 있던 사람들 명단부터 확보했어야 한다는 게 가족들 주장이다. 리처드는 "카트리스가 실종된 날 계산대에서 일했던 직원이 조사를 받는 데 6주가 걸렸고, 어떤 경우는 20년도 걸렸다"며 "탐지견이 투입된 건 24시간이 지나서였고, 국경수비대에 실종 사실을 알린 건 48시간 후였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RMP는 언론에 이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꺼렸다. 카트리스의 실종이 기사화된 건 실종 6주 후였다.


"제발 어딘가에 살아만 있어주렴"

가족들은 카트리스가 자신의 원래 이름과 부모를 모른 채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2000년 재수사가 시작됐다. 영국 BBC방송의 범죄 추적 프로그램 '크라임워치'는 같은 해 11월 카트리스의 21번째 생일에 맞춰 실종 사건을 재구성해 방송했다. 이후 신원미상의 한 여성이 리처드의 전화 자동응답기에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프랑스에서 딸을 찾으세요." 경찰은 음성이 녹음된 테이프를 가져갔지만 수사에 진전은 없었다. 사건은 다시 종결됐다.

가족들의 싸움은 필사적이었다. 2012년 RMP는 초기 수사 과정에서의 실수를 인정했다. 초동 수사 중 수집된 정보를 재분석해 리페강의 지류인 알메강을 수사 구역으로 식별해냈다. 2017년 수사는 다시 재개됐다. 36년간 묻어뒀던 한 남성의 사진도 공개됐다. 카트리스 실종 당시 어린아이를 녹색 세단에 태우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남성이었다.


수사팀은 카트리스 실종 다음 날 알메강 다리에서 문제의 녹색 세단이 목격됐다고 밝혔다. 이듬해 4월 군과 민간 법의학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알메강 변을 파헤쳤다. 100명이 넘는 병력이 5주간 발굴 작업에 동원됐다. 뼛조각이 발견됐지만 카트리스의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수사는 소득 없이 종료됐다.

2019년 9월 RMP는 영국 남서부에서 전직 군인 출신 한 남성을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무혐의로 풀려났다. 1년 뒤 RMP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을 때만 수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34년 조국에 몸 바쳤건만… 훈장 반납하는 아버지

카트리스 실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양날의 검이었다. 카트리스를 사칭하는 인면수심의 사기꾼들로 가족들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2020년 8월에는 하이디 로빈슨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카트리스인 척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했다. 너태샤에게 친구 요청을 한 로빈슨은 가족들의 계정 폐쇄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DNA 검사 결과 당연히 카트리스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오히려 '은폐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 여성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점이 참작됐다.


34년간 군 복무 후 1999년 전역한 리처드는 카트리스 사건에 매달렸다. 그는 RMP가 아닌 민간 경찰이 사건을 인계해 독립적으로 수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21년 11월에는 당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아버지 대 아버지'로 만났다. 하지만 군과 정부는 그의 믿음을 앗아갔다. 리처드는 "당시 총리와의 만남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라며 "의미 있는 어떤 것도 논의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항의 표시로 그는 여왕과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받았던 훈장 2개를 반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오는 31일 다른 퇴역 군인들과 함께 총리 관저가 있는 런던 다우닝가를 행진할 예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그만 포기해라.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편해지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아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리처드)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이 해답을 얻는 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카트리스가 살아서 건강하게 최고의 삶을 살아왔기를 바랄 뿐입니다."(너태샤)

권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