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트 끼고 부활한 강백호, '신형 포수' 장르 개척

입력
2024.05.13 15:52
23면
포수로 뛰며 '천재 타자' 모습 되찾아
홈런, 타점, 최다 안타 부문 1위 질주
LG도 잘 치는 '포수 김범석' 준비

‘천재 타자’ 강백호(KT)가 확실히 살아났다. 시즌 출발이 좋지 않았지만 3월 말 우연히 포수 마스크를 쓴 뒤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0.265(3월)에 그쳤던 월간 타율이 0.336(4월), 0.429(5월 13일 기준)로 치솟았다. 홈런은 12개로 공동 1위, 타점(41개)과 안타(63개)는 선두를 달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포수 변신이 강백호의 천재성을 끌어냈다. 서울고 재학 시절 투타 겸업을 하며 포수로 뛰었던 강백호는 2018년 프로 입단 후 외야수, 1루수, 지명타자로만 뛰었으나 올해 자기 자리를 되찾았다. 여전히 대부분 지명타자로 나가지만 주전 포수 장성우가 쉴 때 대신 마스크를 쓰고 안방을 지킨다.

프로 무대에서 ‘포수 강백호’는 어색해 보였지만 금세 적응했다. 포구부터 블로킹, 송구까지 기대 이상이었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태도 논란이 불거진 이후 지난 2년간 평범한 타자로 전락했던 강백호는 포수에 재미를 느끼면서 자신감도 쌓았다.

이강철 KT 감독은 “경기 전에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포수 연습을 하고 있다”며 “포수로 나가는 것을 즐거워하다 보니 성적도 함께 오르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백호가 포수로 출전할 때 사인은 모두 본인이 낸다”며 “타자 입장에서 치기 어려운 공들을 생각해서 사인을 내니까 투수들도 강백호의 리드를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포수 강백호’는 올해 새로 도입된 자동 볼 판정시스템(ABS)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BS 도입 전에는 심판의 눈을 교묘하게 속여 볼을 스트라이크 판정 받도록 미트를 잘 움직이는 프레이밍 능력이 포수에게 중요시 여겨졌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베이스 크기도 종전보다 커져 포수의 송구만으로 주자의 도루를 막는 것도 쉽지 않다. 도루의 1차 저지선인 투수 견제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강백호가 기존 포수들이 걷지 않은 새 장르를 개척하면서 ‘제2의 포수 강백호’도 머지 않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LG는 2년 차 거포 김범석을 박동원의 백업 포수로 준비시키고 있다. 김범석은 경남고 시절 안방을 지켰지만 급격히 늘어난 체중 때문에 1군에서 포수 마스크를 쓰지 않고 1루수 미트를 낀다.

그러나 타격 실력만큼은 빼어나다. 올 시즌 21경기에서 타율 0.344에 3홈런 16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62를 기록 중이다. 염경엽 LG 감독은 김범석이 백업 포수로 자리를 잡으면 팀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마스크를 쓸 기회를 종종 주기로 했다. 이에 김범석은 지난 12일 부산 롯데전에서 포수 데뷔전을 무난하게 치르기도 했다. 염 감독은 “아직 많이 연습해야겠지만 점수 차가 클 때 기회를 주고,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왔다 싶으면 박동원이 쉴 때 기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023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6순위 출신 키움 김건희는 퓨처스리그(2군)에서 투타 겸업을 접고 포수만 준비한다. 원주고 재학 시절 주 포지션이 포수였지만 프로 입단 후 포수 경험이 없어 시간을 갖고 1군에 올라올 전망이다.

김지섭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