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이 석 달 가까이 풀리지 않으면서 대학들이 의대생 집단유급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방학 기간에 운영되는 계절학기를 최대한 활용하거나 수업을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방안 등이 공통적으로 논의되는 가운데, 일부 대학은 의사 국가시험을 늦춰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12일 대학가에 따르면, 의대를 둔 40개 대학은 지난 10일 전후로 이 같은 내용의 학사 운영 방안을 교육부에 냈다. 앞서 3일 교육부가 의대생 유급 방지책을 마련해 제출하라며 보낸 공문에 회신한 것이다.
다수 대학은 계절학기 적극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방학 때 최대 9학점(3과목) 이수가 가능한 계절학기로 의대생 수업 공백을 최대한 메우겠다는 것이다.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여름방학에 3과목, 겨울방학에 2과목을 운영해 (학사를) 끌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홍 총장은 현재 예과 1학년생(정원 110명)이 유급해 내년에 증원된 신입생(155명)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것을 가장 우려되는 상황으로 꼽았다.
경북대 등 일부 대학은 통상 9월 본과 4학년이 실기시험을 치르는 의사 국가시험 일정을 조정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응시원서 제출 전까지 의학교육 평가인증에 따른 임상실습 시수(52주, 주당 36시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다. 경북대 측은 "4학년은 임상실습이 12시간만 남아 국시를 10, 11월로 미뤄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가 공문에서 제안한 대로 학기제를 학년제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대학도 있다. 울산대 관계자는 "탄력적 학사운영안으로 학년제 전환과 학기 개시일 추가 연기, 수업일수 조정, 원격수업 전환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소 30주인 수업일수를 1, 2학기에 각각 15주씩 소화해야 하는 학기제와 달리, 학년제는 내년 2월 학년 말까지 30주 수업만 채우면 되기 때문에 8월에 수업이 재개돼도 학생 유급을 막을 수 있다. 다만 학내에서는 "의대생 다수가 내심 쉬고 싶어 하는데 (학년제 적용으로) 힘들게 몰아치려 하면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교양수업을 다른 학과생들과 같이 듣는 경우라면 학년제가 무용지물이라는 회의적 반응도 나온다.
계명대 등은 '블록제'로 운영하는 과목의 평가를 학기 말에 몰아서 하기로 결정했다. 전공과목 일부는 학기보다 짧은 기간(블록)에 집중적으로 수업과 평가를 진행하는 의대 관행을 감안한 조치다. 수도권 일부 대학은 1학점당 이수시간을 최소 15시간으로 정한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근거로 '집중이수제'를 시행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 이수시간 규정만 준수한다면 30주 수업을 15~20일에 몰아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했을 때 이미 유사하게 시행해본 방안"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학은 이런 대책으로 시간을 벌 수 있을 뿐 의대생 유급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게 대학가의 대체적 인식이다. 의정 대화로 대치 국면을 푸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는 것이다. 사태 장기화로 유급을 피하기 어려워진다면 휴학을 허용하는 게 차라리 나은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국립대 총장은 "학생들이 휴학 (승인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일정한 시점에는 '휴학을 허락해 줘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