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 조정석, 손석구 등 최근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스타들의 행보와 황정민을 함께 언급하는 건 사실 어색하다. 황정민(54)은 '천만 배우'를 넘어 '1억 관객 배우'의 기록을 세우면서도 무대를 떠난 적이 없다. 학전 1기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황정민은 2005년 개봉작 '너는 내 인생'의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으로 화제가 된 후에도 뮤지컬 '나인'(2008), 연극 '웃음의 대학'(2008) 등에 출연했다. 한동안 뜸하긴 했어도 영화 '공작'으로 상을 받은 2018년 즈음엔 연극 '리차드3세', '오이디푸스'로 잇달아 무대에 섰다.
황정민이 이번에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로 7월 13일부터 8월 1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2022년 '리차드3세' 재공연 이후 2년 만이다.
황정민은 마녀들의 예언으로 욕망에 눈을 떠 왕권을 찬탈하고 종국엔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장군 맥베스를 연기한다. 영화 '아수라'의 박성배, '서울의 봄'의 전두광에 이어 또다시 탐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역할이다. 황정민은 10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맥베스'는 욕망의 끝을 달리는 이 캐릭터들의 레퍼런스가 되는 백과사전 같은 책"이라며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유독 함축적이어서 후대가 해석하고 공부할 거리가 많은 '맥베스'는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주가 왕이 된다는 말에 현혹됐으니 구청장이 대통령이 된다는 말을 듣고 탐욕의 끝을 향해가는 셈"이라고 캐릭터를 풀이하기도 했다.
"고전의 위대함"은 황정민의 무대 '귀소본능'의 이유이기도 하다. '맥베스'는 '리차드3세'와 '오이디푸스'에 이어 황정민의 배우자인 김미혜 샘컴퍼니 대표가 제작하는 작품. 황정민은 "선배들이 하는 고전극을 보고 많이 배웠는데 요즘 고전극을 볼 수 있는 극장이 없어 '우리가 하자'고 해서 고전 작품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정민이 무대에 꾸준히 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 3월 문 닫은 김민기의 학전이다. "기본을 강조한 김민기 선생님의 가르침이 지금 배우 활동의 원동력"이라고 거듭 밝혀 온 황정민은 이날 제작발표회에선 "(학전) 이야기를 잘 안 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마음이 너무 아파 최근 방영된 (학전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보지 않았다"며 "'뒷것'이라고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함 등 (김민기 선생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기 때문에 학전의 좋은 정신을 계속 품으려 한다"고 말했다.
오롯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준비하고 무대 위의 모습을 스스로 편집해야 하는 무대 연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배우도 많지만 황정민은 다르다. 그는 "감독의 예술에 가까운 TV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며 "관객과 소통하며 매회 다른 느낌을 받는 연극은 내게 힐링하는 시간이자 공간이어서 관객과 빨리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연출은 '코리올라누스', '파우스트' 등으로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을 꾸준히 시도해 온 양정웅 연출가가 맡았다. 문학적 수사 등 셰익스피어 본연의 맛은 살리되 여신동 무대미술가가 꾸미는 현대적 미장센으로 차별화할 계획이다. 양 연출가는 "'맥베스'는 브레이크 없이 욕망과 쾌락의 끝을 향해 달려간 뒤 상실감과 죄책감, 양심의 문제를 겪는 인간 원형을 잘 집어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전 '황정민표 연극'처럼 '맥베스'도 황정민을 비롯한 모든 배우가 5주간 '원 캐스트'로 출연한다. 맥베스의 살인을 부추기는 레이디 맥베스는 김소진이, 맥베스의 욕망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뱅코우는 송일국이, 맥베스에게 살해당하는 덩컨은 송영창, 맥베스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맥더프는 남윤호가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