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황금기는 1930년대다. 훗날 고전이란 수식을 얻는 걸작들이 쏟아졌다. 경쟁 영상매체가 없던 때였다. 극장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여가의 중심이었던 극장은 화려하고도 화려했다. 여럿이 식사와 술을 즐기며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설을 별도로 갖춘 극장들이 성업했다. 당시 호화 극장들은 ‘영화 궁전’이라는 별칭이 따랐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연상케 하는 건축과 꾸밈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이집트 극장(The Egyptian Theater·1922년 개관)'이 대표적이다.
TV가 등장하면서 할리우드는 휘청였다. TV는 1950년대 영상매체의 주도권을 가져갔다. 할리우드는 컬러와 16대 9 비율 대형 스크린으로 맞섰다. 1970년대 컬러 TV의 대중화는 쐐기나 마찬가지였다. 여러 채널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TV에 대적할 매체는 없었다.
도심에 자리 잡았던 대형 극장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극장들은 외곽으로 밀려났다. 반전의 계기가 생겼다. 멀티플렉스였다. 땅값 싼 변두리에 대형 건물을 짓고 여러 영화관이 들어가도록 한 새로운 극장 형태의 등장이었다. TV처럼 영화도 골라볼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은 주차하기 편하고, 여러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에 마음을 열었다. 쇼핑몰과 함께 들어선 멀티플렉스가 많기도 했다. 황금기만큼은 아니어도 극장은 다시 호황을 맞았다.
멀티플렉스는 한국 영화 부흥기를 이끌기도 했다. 1998년 CGV를 필두로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이 속속 등장해 영화 유통구조에 혁명을 일으켰다. 관객들은 집 가까운 곳에서 여러 영화를 편하고 빠르게 즐길 수 있게 됐다. 2000년 2,626만 명이었던 국내 총관객 수는 2019년 2억2,668만 명으로 10배나 성장했다. 빛이 강한 만큼 어둠은 짙었다. 대형 영화 한 편이 스크린 상당수를 차지하는 독과점 문제는 국내 멀티플렉스 체인의 폐해로 지적되고는 했다.
요즘은 어떤가. 국내 멀티플렉스는 영화관을 여럿 지닌 곳으로만 전락하고 있다. 국내 영화산업 성장 엔진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형 작품이나 흥행작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경향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해졌다. 상영 중인 ‘범죄도시4’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27일 ‘범죄도시4’의 상영 점유율은 82%다. 전국 극장이 하루 종일 ‘범죄도시4’만 상영한 꼴이다. 상영 점유율이 지금은 떨어졌다고 하나 56.9%(9일 기준)로 여전히 높다.
극장의 처지가 일면 이해되기도 한다. 지난해 극장 총관객 수는 1억2,513만 명이었다. 코로나19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 쌓였던 적자가 만만치 않기도 하다. 흥행하는 영화를 한꺼번에 상영해 큰돈을 바로 벌고 싶은 조바심이 들 만도 하다.
극장이 당장은 미소 지을 수 있다. 특정 영화만 몰아준다는 비난을 감내할 만큼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극장의 미래를 위해 과연 옳은 일일까. 관객이 ‘범죄도시4’를 본 뒤 더 이상 극장을 찾을 이유가 없다면 과연 극장에 좋은 일일까. 극장 대체재로 최근 급부상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멀티’하지 않은 멀티플렉스는 공룡의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