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건강보험 체계가 확립되기 이전인 1980년대에는 가난한 집안에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자녀는 안타까움의 대상이었다. 한국일보는 1981년 심장병에 걸린 어린이의 생명을 다수 구해낸 시리즈 기사로 특종은 물론 공익에도 강한 매체라는 명성을 얻었다.
1980년대 내내 우리 사회에 ‘심장병 어린이 구하기’ 화두를 던진 시리즈 기사는 독자 제보에서 비롯됐다. 당시 시리즈를 주도했던 임철순 기자(편집국장ㆍ주필 역임)는 1981년 5월 23일, 사회면 톱으로 ‘섬마을의 꿈 꺼져 간다’ 제목의 기사를 썼다. 경남 통영시 용남면의 낙도 어의도 소년 양형도(당시 11세)군의 사연이었다. 양군은 좌심실과 우심실 사이에 구멍이 뚫린 심실중격결손증에 동맥관개존증이 겹쳐 생명이 위태로웠다. 어의초등학교 유경두 교장이 서울 한양대병원에 근무하는 사위에게 문의했고, 의료진은 무료검진을 통해 병명을 확인했다.
이 사연이 한국일보를 통해 알려지자마자 하루 만에 당시로는 거액인 1,000만여 원의 성금이 들어왔다. 한양대병원은 앰뷸런스로 양군을 이동시켰는데, 임 기자도 어의도까지 동행했다. 이후 6월 4일 한양대병원은 흉부외과 박영관 교수의 집도로 양군을 무료로 수술, 그의 심장기능을 정상으로 회복시켰다. 양군은 7월 4일 퇴원했다. 그가 새 심장으로 귀향한 날, 섬마을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40여년전 소년 양형도는 지금 두 아들을 둔 50대 가장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다.
양군의 수술을 계기로 한국일보는 ‘심장병 어린이를 구하자’는 시리즈로 대대적 캠페인을 벌였다. 양군 사연은 잡지와 KBS TV의 단막 드라마로도 소개됐다. 임 기자는 1981년 8월 제13회 한국기자상(한국기자협회) 취재부문상을 받았다. 임철순 전 주필은 “기자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양형도를 비롯한 심장병 어린이를 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즈가 끝난 뒤 비슷한 처지의 가정에서 '우리 아이도 살려달라'는 호소가 잇따랐다. 이에 호응해 한국일보는 정부에 심장재단 설립을 촉구하는 기획과 캠페인을 주도했다. 이후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가 주도하는 새세대심장재단이 1984년 설립되면서, 한국일보는 독자들의 성금을 해당 재단에 전달했다.
※연재 일정상 70개 특종 가운데 50개를 선별 게재하기 때문에, 일부(예: <15>最古(최고)의 태극기를 찾았다·1979) 특종은 소개되지 않습니다. 독자님들의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