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한국시간 7월 26일 개막)을 밝힐 성화가 지난 8일 프랑스 제2도시 마르세유에 도착, ‘올림픽 열기’가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3년 전 2021년 여름 도쿄에서는 우상혁(높이뛰기) 선수가 도약했고 안산(양궁) 선수가 과녁을 뚫었으며 신재환(체조) 선수가 도마를 짚고 날아올랐다. 하지만 당시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던 때로, 125년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무관중 대회로 치러졌다. 박수도 함성도 없는 개막식은 흡사 사뮈엘 베케트의 부조리 연극 같았다. 그러나 이번엔 수많은 관중과 문화예술이 함께하는 스펙터클한 올림픽이 열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따르면 2022베이징동계올림픽 시청자 수는 무려 20억 명이었다. 파리올림픽은 이 수치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무려 8년 만에 ‘올림픽답게’ 치러지는 셈이다. 그것도 파리에서!
프랑스 파리. 이 대목이 중요하다. 프랑스는, 그리고 파리는 제국의 역사와 혁명의 역사가 이중나선으로 뒤엉킨 곳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의 나라이고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파리올림픽 개막식에 세계인의 이목이 더욱 쏠리는 이유다.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은 화려했지만, 중화주의를 너무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노동 계급의 시선에서 역사를 새로 쓴 위엄 있는 한 편의 뮤지컬이었다. 2016 리우올림픽 개막식은 시인 비니시우스와 음악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을 올림픽 마스코트로 삼은 브라질답게 다양성을 강조한 카니발을 선보였다. 아름다웠다.
이번에는 파리 아닌가. 그들은 아예 경기장을 벗어나 개막식 스펙터클을 선보일 장소로 센강을 선택했다. 선수단을 태운 보트가 파리 동쪽 오스테를리츠 다리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6㎞를 이동, 에펠탑 인근 트로카데로 광장에 오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4월 15일 “테러 위협이 포착되면 트로카데로 광장에서만 치를 수 있다”고 했으나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는 ‘뜬금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치고받는 논쟁으로 피의 역사를 써온 프랑스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마크롱 대통령은 종종 얼음물에 뛰어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지난 3월 팔뚝을 드러낸 채 샌드백을 강타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전파했고 4월에는 디디에 드로그바, 에당 아자르 등 월드클래스 선수들과 함께 자선축구를 했는데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팀 승리에 ‘공헌’했다. 그리고 “올림픽 기간에 전 세계가 휴전하자”는 중요한 제안을 했다. 5월 6일 엘리제궁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를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그들은 ‘동서 합작’으로 러시아의 푸틴을 견제하는 중이다.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인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는 러시아는 ‘세계친선대회(WFG)'를 별도로 개최할 예정이다. IOC는 “스포츠의 정치화”라고 비판했다.
사실 ‘스포츠의 (국제) 정치화’는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스포츠가 지닌 사회적 가치와 올림픽에서 표현될 예술적 의미, 그리고 올림픽과 인류 공동의 문제는 연관돼 있다. 지난 2017년 9월 파리가 ‘1924 파리올림픽’ 이후 정확히 100년 만에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을 때 프랑스는 ‘연대, 탁월, 우정, 존중’이라는 가치를 천명했다. 당시 주한프랑스대사관도 “‘사회적 책임’,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 ‘생태적 책임’의 대회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렇게 올림픽은 인류사의 공동 가치를 함께 모색하는 국제 정치의 장이 됐다.
IOC는 20세기의 올림픽이 국가주의와 개발주의에 오염됐음을 자인했다. 올림픽 유치가 국민 동원 권력체제의 기제가 되고 환경 파괴와 도시 불평등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IOC는 이와 작별하고 21세기의 문화적 대전환을 추구했다. 그 결정판이 ‘올림픽 어젠다 2020’이었고,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올림픽 어젠다 2020+5’로 발전시켰다. 수십 명의 국제 스포츠 전문가가 수백 쪽에 걸쳐 천명한 바를 요약하면 분쟁, 재난, 환경, 생태, 혐오, 차별 등 인류의 중대한 문제를 올림픽을 통해 완화하거나 공론화하는 것, 적어도 올림픽 자체가 이를 생산하고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IOC는 이어 2023년 10월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제141차 총회에서는 아예 인권을 강조한 올림픽헌장 개정안을 승인했다. 인권이 옵션이 아니라 올림픽 헌장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정된 것이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올림픽 운동은 인권이다. 우리의 이해관계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또한 IOC는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핵심적 협력 기구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지난 4월에는 인공지능(AI)과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테마로 한 국제 콘퍼런스를 열었다. IOC는 AI 기술을 활용해 올림픽 기간 중 온라인에서 선수들과 관계자들에게 가해지는 혐오와 차별을 실시간으로 차단하고 이후 강력하게 제재할 방침이다.
올림픽에서는 필연적으로 환경 파괴 요인이 발생한다. 실제로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340만 톤의 탄소가, 2016 리우올림픽에서는 360만 톤의 탄소가 배출된 것으로 측정됐다. 그래서 이번 파리올림픽에서는 ‘탄소 제로 가이드라인’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런던·리우 대비 탄소 발자국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 목표다.
파리올림픽 시설의 95%가 기존 시설이나 임시 시설을 활용한다. 또 경기장의 80%가 반경 10㎞ 이내에 밀집해 있다. 이 경우 교통수단을 이용한 이동 거리를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무려 1만 대의 자전거가 움직여 탄소배출량을 더 줄일 예정이다. 실제로 에펠탑 밑에서 비치 발리볼과 장애인 축구 경기가 열린다. 또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마가, 콩코르드 광장에서 BMX 자유형·스케이트보드 경기가, 나폴레옹이 잠들어 있는 앵발리드 광장에서 양궁이 열린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그 혁명의 역사적 장소에서 21세기의 청년들이 보드를 타고 활을 쏜다. 그리고 파리올림픽·패럴림픽 공식 엠블럼이 이들을 격려한다. 이번 엠블럼은 프랑스 대혁명의 3대 상징물 중 하나인 ‘마리안(Marianne)'을 활용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 정신(liberté·égalité·fraternité)을 보통 ‘자유, 평등, 박애’라고 해석하는데, 이 중 ‘박애’는 오역이다. Fraternité는 시혜를 베푼다는 뜻의 ‘박애’가 아니라, 서로 다른 계급과 성별, 상황에 처한 자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모으는 ‘연대’를 뜻한다. 영국 방송 BBC는 ‘마리안 엠블럼’에 대해 특유의 영국식 농담으로 “새 샴푸가 출시된 줄… 파리 헤어살롱 오픈하네”라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마리안에 담긴 자유, 평등, 연대의 의미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돼야 한다. 이같이 거대한 문화적 전환 과정 속에서 파리올림픽이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문화적 대전환에 대해 무관심한 것 같아 안타깝다. 기껏해야 ‘대회 기간 한국을 알리는 문화 행사’ 정도로 이해한다. 이런 수준이 계속된다면, 향후 올림픽 유치는커녕 제대로 참가하기도 어렵다. 그 어떤 가치도 제시하지 못한 채 참패한 ‘엑스포 유치 실패’ 사례를 되돌아보라. 한국 발전을 위해서가 아닌, 세계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올림픽에 참가해야 한다.
급기야 지난달 26일 23세 이하 축구대표팀 '황선홍호'가 10회 연속 올림픽 남자축구 본선 진출에 실패, 파리올림픽 선수단 규모가 더 작아지게 됐다. 한국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부터 2021년 도쿄까지 매 대회 200명이 넘는 선수단을 파견했지만, 이번 파리 대회에는 160여 명에 그치게 됐다. 48년 만의 최소 규모다. 금메달 5개, 종합 순위 15위가 목표지만 20위권 안팎이 될 우려도 있다. 양궁의 임시현과 김우진, 근대5종의 전웅태와 김선우, 배드민턴의 안세영, 육상의 우상혁 그리고 수영의 황선우가 자기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창조할 것이다. 또한 마루의 류성현, 클라이밍의 김자인, 스케이트보드의 조현주, 역도의 박혜정, 브레이크댄스의 김헌우의 무대도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위기임에는 분명하다. 유망주 육성, 종목 특성화, 훈련 과학화, 코칭 리더십 등 엘리트 스포츠 정책이 한계에 봉착했다. 이미 2023년 8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확인됐다. 그런데도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해병대 극기 훈련’을 강행했고 장재근 진천선수촌장은 휴대폰 사용 제한 등의 조치를 취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또한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다. 특히 엘리트는 ‘국위선양’에, 생활 영역은 ‘신체 활동’에만 집중돼 있다. 인구 감소, 기후 위기, 불평등, 도시 재생, 혐오와 차별, 문화 변동 등 인류 공통의 가치 및 우리 사회의 문제와는 장벽을 쌓아버렸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파리올림픽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즉 문화적 대전환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은 ‘체육 강국’을 앞세워 미래를 모색했다. 정확히 60년이 흘렀다. IOC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스포츠 선진국 프랑스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술의 도시 ‘파리’가 어떠한 가치를 표현하는지 살펴서 새로운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 그것이 파리올림픽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전 포인트다.
정윤수 교수는 스포츠의 사회·문화적 측면에 주목, 세계 스포츠의 변동을 연구하고 한국 스포츠의 혁신을 주장해왔다.
문체부 산하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과 스포츠윤리센터 이사를 지냈다.
저서로 <축구장을 보호하라> <스포츠, 인권을 만나다>(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