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소속팀) 서울 SK에서는 우승 욕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팀에서는 너무 욕심이 나더라고요.”
2023~24시즌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주역 최준용(부산 KCC)이 시즌 전 가졌던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내가 KCC에 오면서 팀이 주목을 받았고, ‘슈퍼팀’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감사하면서도 책임감이 커졌다”며 “SK에서는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고 우승했다면, 이 팀에서는 정말 욕심을 내고 우승했다”고 부연했다. 사상최초 ‘정규리그 5위 챔피언’을 견인한 ‘우승 보증수표’ 최준용을 8일 경기 용인시 KCC체육관에서 만났다.
여느 해보다 우승을 향한 갈망이 컸지만, 최준용과 KCC의 올 시즌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KCC는 최준용을 포함해 허웅 라건아 이승현 송교창 등 국가대표급 라인업을 보유하고도 정규리그 5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슈퍼팀’이라는 명성에 비해 아쉬운 성적이었다. 그럼에도 최준용은 정규리그를 돌아보며 특유의 자신감과 여유를 보였다. 그는 “사소한 계획이나 선수 구성 등에서 예상을 빗나간 적은 있지만, 우승을 의심한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며 “예상했던 우승”이라고 강조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KCC의 플레이오프 첫 상대는 전 소속팀 SK였다. 최준용은 지난해 5월 KCC 입단기자회견에서 “SK는 더 이상 우승후보가 아니다” “(주축 선수가 고령화한) SK 노인즈” 등의 발언을 하며 7년 간 몸 담았던 친정팀을 도발했다. KCC가 챔프전 우승컵을 든 5일에는 수훈 선수 인터뷰를 마친 후 “SK 배 아프겠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최준용은 “나는 솔직히 SK를 정말 좋아한다. 마치 전 여자친구를 향한 미련 같은 것”이라며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오프에서는 SK를 무조건 이겨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래도 내가 필요 없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의 바람과 집념 덕분이었는지 KCC는 SK를 3연승으로 따돌렸고, 기세를 몰아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정규리그 1위팀인 원주 DB를 3승 1패로 무너뜨렸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였지만, 챔프전에서 수원 KT를 만난 최준용은 2차전(6점 4리바운드 8어시스트)과 3차전(9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에서 명성에 못 미치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최준용은 “나는 전혀 위축되거나 힘들지 않았다”며 “당시에는 팀원들이 너무 잘 해주고 있어서 내가 굳이 무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리바운드와 수비 등 궂은 일에 초점을 맞췄을 뿐”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4차전 맹활약(24점 8리바운드 4어시스트)의 비결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했다. 3차전 승리 후 농구장 한 켠에 홀로 서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그는 “팀원들의 체력부담이 머리를 맴돌았다”며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다른 선수들이 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준용의 공격력이 더해진 KCC는 결국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13년 만에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번 챔프전 승리는 최준용에게 우승반지 외에 또 다른 의미도 남겼다. 그는 “나는 솔직히 이타적인 플레이를 좋아하는 편이다. (허)웅이나 (라)건아가 내 도움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희열을 느끼는 스타일”이라면서도 “그런데 상대 외인 패리스 배스의 플레이를 통해 ‘1옵션이 돼서 모든 선수들이 나만 바라보는 플레이를 하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고민도 해보게 됐다”고 전했다. 톡톡 튀는 평소 모습과 달리 농구에 있어서 만큼은 늘 진지한 그의 속내가 엿보이는 발언이다.
농구에 대한 진심과 소신은 때론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국가대표팀을 향한 거침없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참사 이후 새롭게 닻을 올린 현 대표팀에도 그는 여전히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최준용은 “국가대표 감독, 코치, 선수를 뽑는 기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대한농구협회가 진짜 농구를 사랑하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스태프 규모 등을 보면 국제대회에 나가기 창피한 수준”이라며 “대표팀을 정말 사랑함에도 (대표팀에) 가기 싫을 정도다. 모든 게 바뀌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준용은 소속팀의 미래를 그릴 때도 진지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우승 직후 기자회견에서 “(남은 계약기간인) 4년 동안 계속 우승하겠다”고 공언한 그는 “올 시즌 KCC는 (선수들끼리) 완벽하게 적응을 마친 팀이 아니었다”며 “앞으로 서로 더 적응하고 큰 무대에서 합까지 맞춘다면 충분히 5연속 우승이 가능하다고 본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