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032년 반도체 생산 능력을 지금보다 세 배 늘려 전 세계 공급망의 14%를 차지할 거라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막대한 보조금을 뿌린 결과로 특히 10나노(㎚·10억 분의 1m) 미만 첨단 반도체 생산 비중이 2022년 0%에서 10년 만에 28%까지 늘어날 전망도 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 비중은 31%에서 9%로 쪼그라든다는 예상도 나와 국내 관련 업계로서는 큰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8일(현지시간)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발표한 보고서 '반도체 공급망 새로운 회복 탄력성'에 따르면 10나노 미만 첨단 반도체는 2022년 한국과 대만에서 100% 만들어졌지만 2032년에는 44%가 한국과 대만 바깥에서 만들어진다. 첨단 반도체는 데이터센터(IDC), 스마트폰, 인공지능(AI) 기기 등에 쓰이는 핵심 부품으로 보고서는 "앞으로 첨단 기술의 약 70%가 10나노 기술로 제조된 반도체에 의존하면서 (첨단 반도체) 생산비가 훨씬 비싸질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2022년 미국 반도체법에 따라) 민간 분야는 2024~2032년 사이 웨이퍼 제조에만 약 2조3,0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도체법 제정 이전 10년 동안(2013~2022년) 7,200억 달러만 투자된 것과 대비된다"고 밝혔다.
2022년 제정된 반도체법은 미국 본토에 투자하는 반도체 제조 회사에 390억 달러의 직접 보조금과 25%의 투자 세액 공제(ITC) 등 총 520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정부 보조금이 반도체 회사들이 투자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말이다. 특히 "2032년까지 미국의 반도체 공장(팹)은 지금의 세 배 수준으로 증가해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전 세계 팹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10%에서 14%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반도체법이 없었다면 미국의 팹 점유율은 2032년 8%까지 떨어졌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현재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은 분업화돼 ①설계·핵심 설계자산(IP)·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분야는 미국이 ②장비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이 ③첨단 반도체 생산은 대만과 한국이 ④후공정(ATP)은 중국과 대만이 주로 담당한다. SIA는 반도체법으로 공급망의 "복원"이 이뤄지며 지역별로 각 공정을 골고루 나눠 맡게 될 거라고 내다봤다.
특히 우리나라의 핵심 경쟁력인 첨단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큰 변화가 예상됐다. 보고서는 "미국은 2022년에는 (10나노 미만) 첨단 반도체를 거의 생산하지 못했으나 2032년이면 거의 30%를 생산할 것"이라며 "유럽과 일본도 12%가량을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변화는 한국에 극심한 타격을 줘 같은 기간 첨단 반도체 생산 비중이 31%에서 9%로 급락한다. 대만 비중은 69%에서 47%로 줄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은 2032년에도 D램(52%→57%)과 낸드(30%→42%) 등 메모리 분야에서 여전히 우위를 갖고, 10~28나노 공정(4%→6%)과 28나노 이상 범용반도체(5%→5%) 생산 비중이 지금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종합적 반도체 생산력을 따져보면 한국의 점유율은 2022년 17%에서 2032년 19%로 소폭 증가해 중국(2032년 21%)에 이은 2위 국가가 될 전망이다. 시장 변동성이 큰 메모리 분야에서만 압도적 우위만 유지할 뿐 고부가가치 영역인 첨단 공정 경쟁에서는 밀려나는 셈이다.
보고서는 한 가지 경고를 덧붙였다. 주요국의 보조금 경쟁으로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면 우리가 그나마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가질 범용 반도체 시장에 영향을 줘 제품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