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유 사면 멸종위기 오랑우탄 드려요"…말레이시아판 '판다 외교'

입력
2024.05.09 17:30
EU '삼림벌채 관련 제품 수입 금지' 조치 대처
GDP 3% 차지 핵심 산업 보호 위한 대책 풀이
국제환경보호단체 "서식지 보호 초점 맞춰야"

말레이시아가 자국 팜유를 사들이는 국가에 멸종위기종 오랑우탄을 보내기로 했다. 친선·우의 표시로 판다를 선물하는 중국처럼, ‘오랑우탄 외교’를 통해 주요 수입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모습이다. 팜유 생산 과정에서 오랑우탄 서식지 열대 우림을 대거 파괴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조하리 압둘 가니 말레이시아 플랜테이션·원자재부 장관은 “유럽연합(EU), 중국, 인도 등 팜유를 수입하는 나라에 오랑우탄을 선물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말레이시아가 생물 다양성 보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세계에 증명하겠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어로 ‘숲속의 사람’이라는 의미인 오랑우탄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심각한 멸종위기종이다. 현재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브루나이 영토로 나뉘어진 보르네오섬에 약 10만5,000마리, 수마트라섬에 약 5,000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레이시아 팜유 산업 보호 목적

말레이시아의 동물 외교 선언은 자국 팜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팜유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식물성 기름이다. 과자, 초콜릿, 비누, 세제 등 수많은 제품에 들어간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팜유 생산량의 85%를 차지하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말레이시아산이다. 말레이시아 국내총생산(GDP)의 3%를 차지하고 연간 400만 명의 고용효과를 부르는 핵심 산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팜나무 경작을 위해 열대 우림을 깎고 대규모 농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오랑우탄 서식지가 파괴된다는 비판도 크다. 말레이시아 팜유 최대 수입국인 EU는 2022년 12월 산림 황폐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오는 2030년까지 삼림벌채를 통해 생산된 팜유, 커피, 고무 수입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환경단체 "오랑우탄 원래 서식지 보호해야"

주력 상품 수출이 위태로워지자 말레이시아 정부가 환경 파괴 우려를 잠재우고 외교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오랑우탄 외교’를 계획한 셈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판다 외교 성공을 흉내내 수십억 달러 규모 팜유 산업의 삼림벌채에 대한 비판을 완화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환경단체는 거세게 반대한다. 국제환경단체 세계자연기금(WWF)은 “오랑우탄을 다른 나라로 보낼 것이 아니라 자연 서식지를 보호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숲을 팜유 농장으로 개발하는 것부터 중단하라”고 반발했다. 비영리 연구단체 ‘말레이시아 야생동물을 위한 정의’도 “오랑우탄 외교 영향과 타당성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며 “정부는 다른 외교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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