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여전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다. 어떤 이들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 정도 했으면 된 것 아니냐"고 피로감과 냉소를 드러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44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날에 대한 폄훼와 왜곡이 넘쳐난다. 2020년 말 출범한 범정부조사위원회인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조위)가 4년간 조사 활동 끝에 내놓은 보고서(초안)마저 부실 논란을 낳았고, 최근엔 5·18 북한 침투설을 기정사실화한 메타버스 게임까지 등장했다. 5·18에 대한 역사적 해석은 차치하고 기본 사실 관계조차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5·18이 미완의 역사로 평가받는 이유다.
올해로 5·18 44주년을 맞는 광주는 그래서 서글프다. 그렇다고 계속되는 '5·18 분칠 행위'를 마냥 보고만 있을 순 없는 일이다. 그예 광주 시민들이 "우리 손으로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고 다시 뭉쳤다. '5·18 역사서' 편찬 작업을 통해서다.
5·18 기념재단의 원순석(73) 이사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18 44주년 화두는 역사 바로 세우기"라며 "7월 역사편찬위원회(가칭)를 꾸려 5·18 역사서 발간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7일과 10일 각각 대면과 전화 인터뷰로 진행됐다. 5·18 기념재단은 5·18 피해자들이 보상금을 모아 설립한 민간 단체로 광주광역시로부터 5·18 관련 사업들을 위탁받아 기금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최근 진조위 보고서는 검경 가해자들을 피해자처럼 묘사하거나 계엄군 간 오인 사격에 의한 피해를 마치 시민에 의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며 "5·18을 다룬 통사(通史)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선 자칫 후대에 왜곡된 역사를 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정확한 역사서 편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간 황석영 작가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처럼 5·18 기록물은 많았지만 5·18 전문가와 역사학자 등이 대거 참여해 역사서를 편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 이사장은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역사서이지만 정사(正史)에 버금가는 정확한 사실 규명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그날 참혹한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또 피해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미화하는 '광주의 이야기'만을 쓰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원 이사장은 "기존 개인 평전 등 5·18 관련 서적들은 개인의 경험담에 의존해 일부 참가자들의 행적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영웅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진단하며 "치밀한 조사와 철저한 검증을 통해 편향성 없이 올바른 역사서를 발간하겠다"고 강조했다. 5·18기념재단은 이를 위해 역사편찬위원회를 통해 연말까지 5·18 관련 각종 문헌을 수집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편찬 방향과 범위도 이때쯤 결정할 계획이다. 역사서를 빨리 만드는 것보다 제대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매년 1억 원의 예산을 들여 5년간 전문가 그룹의 편찬과 검증 작업 등을 거친 사료들을 집대성한 뒤 5·18 50주년인 2030년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원 이사장은 "5·18은 단순히 광주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1980년 4월 강원도 사북 항쟁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 이어진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모두 조망하고, 개별 5·18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교차 검증을 통해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시기를 1980년 5월로 못 박지 않고 그 전후 시기와 전 지역에 걸쳐 역사적 줄거리를 서술하는 역사서를 내겠다는 것이다.
다만 최초 발포 책임자, 전투기 출격 대기 등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는 고민거리다. 김병인 전남대 사학과 교수는 "5·18 미경험 세대가 전면에 등장하는 2030년 이후 5·18은 보상과 추모 문제로 치환될 수 있어 현시점에 5·18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건 큰 의미가 있다"며 "미완의 과제에 대해선 섣불리 결론을 내지 않고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만을 남기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