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차 배우 이순재가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특별 무대에 올라 연기에 대한 굳건한 소신을 밝혀 후배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이순재는 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진행된 제60회 백상예술대상 축하 공연을 위해 무대에 올라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연기를 펼쳤다. 그는 연극 오디션 참가자로 등장해 "늙은 배우가 필요하다고 해서 찾아온 접수번호 1번"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올해로 90세가 된 이순재"라며 "1956년도 연극 '지평선 너머'로 시작했고, 올해로 69년 차다. 드라마는 175편 정도, 영화 150편 정도, 연극 100편 미만"이라고 말했다.
이순재는 '같이 연기하고 싶은 배우가 있느냐'는 질문에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다 함께 해보고 싶다"면서 앞에 앉은 최민식을 먼저 언급했다. 그는 "영화 '파묘' 잘 봤다"며 "언제 그런 작품을 같이 해봅시다. 내가 산신령을 하든 귀신 역을 하든 같이 해보면 좋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에 감동한 최민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순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어 이병헌에게 "우린 액션을 해야 하는데 이 나이에 치고 받을 순 없고, 한국판 '대부'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내가 말론 브랜도 역할을 하고, 우리 이병헌 배우가 알 파치노 역할을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 언제 한 번 그런 걸 기획해보자"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촉촉해진 눈가로 이병헌은 박수를 보냈다.
이순재는 연기와 관련된 질문이 시작되자 곧바로 진지한 태도로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대본 외우는 건 배우로서 기본"이라며 "배우의 생명은 암기력이 따라가느냐부터 경계선이다. 스스로 판단했을 때 '미안합니다. 다시 합시다'를 100번 하면 그만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본을 완벽하게 외워야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다. 대사에 혼을 담아야 하는데 못 외우면 혼이 담기겠냐"며 "대사 못 외울 자신 없으면 배우 관둬야 한다. 그건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높은 연차에도 연기에 대한 도전을 이어가는 이유로는 "배우로서 연기는 생명력"이라고 답했다. 이순재는 "몸살을 앓다가도 '레디' 하면 벌떡 일어나게 되어 있다"며 "그런데 이 연기가 쉽진 않다. 평생을 했는데도 아직도 안 되고 모자란 데가 있다"고 털어놨다. 다만 "그래서 늘 고민하고 연구하고 새로운 배역 나올 때마다 참고하고 그런다"고 밝혔다.
이순재는 "배우라는 역할은 항상 새로운 작품, 역할에 대해 도전"이라며 "그동안 연기를 아주 쉽게 생각했던 배우, 이만하면 됐다 하는 배우 수백 명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없어졌다"고 역설했다. 그는 "연기에 완성이 없다는 게 이거다. 완성을 향해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게 배우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며 즉석에서 연극 '리어왕'의 한 장면을 선보였다. 짧은 연기를 마친 뒤에는 면접관들을 향해 "꼭 나 시켜야 해"라고 말하고 무대를 떠났다. 이날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은 이순재가 퇴장할 때까지 일제히 기립 박수를 치며 존경을 표했다.
해당 무대를 본 누리꾼들은 "90세란 나이가 무색하다.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구순의 노배우가 선사한 멋진 무대였다"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무대 영상이 담긴 유튜브 조회 수는 이날 하루 만에 36만 회 이상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