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어 바이오도 탈중국… 美 생물보안법 촉각 “수주확대 기회 vs 소부장 위축 우려”

입력
2024.05.08 18:19
'중국 견제' 생물보안법 연내 시행 전망
글로벌 빅파마 탈중국·이원화 선제 추진
위탁생산 수주 반사이익 속 공급망 우려
바이오 소부장 인프라 위기 대비할 필요

올 초부터 미국이 추진 중인 '생물보안법' 제정에 속도가 붙으면서 세계 제약·바이오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탈(脫)중국을 선택한 빅파마들은 대체 시장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중국 모두 버릴 수 없는 기업들은 사업 이원화에 나서는 분위기다. 국내 일부 기업들에 반사이익이 기대되긴 하지만, 의약품 공급 부족이나 임상시험 비용 증가 등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마케팅 힘주는 중국 우시

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된 '바이오 코리아 2024'에서 미국 생물보안법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이는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와 우시앱텍이 전년보다 홍보 부스를 확장하며 대규모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올해 19회를 맞은 이 행사에는 55개국 641개 기업이 참여할 예정이다.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인 우시앱텍은 전시장 입구 바로 앞에 홍보 부스를 전진 배치했다. 전년에 우시바이오로직스와 중간 규모의 전시 블록을 나눠 썼던 것과 비교하면 면적이 대폭 커졌다. 중국 법인에서 20여 명의 마케팅 담당 인력이 지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시바이오로직스도 올해는 두 배 이상 커진 독립 부스를 차리고 예비 고객사를 맞았다. 앞서 두 기업 모두 미국의 생물보안법에 반발해 다음 달 예정된 세계 최대 바이오 박람회 '바이오 USA'에 불참을 결정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중국 바이오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미국 생물보안법은 업계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적 배경에서 추진되고 있어 설사 시행되더라도 적용 범위가 제한적일 터라 우시앱텍과 우시바이오로직스의 고객사에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은 주요 신약개발 기업 중 3분의 2가 우시앱텍의 고객사일 정도로 주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 시장의 축소에 대비해 두 기업이 한국 마케팅을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산 원료·기술 빼야 하나

생물보안법은 미국 내 유전자 분석 정보와 지식재산권(IP), 민감한 바이오 데이터가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안으로 베이징게놈연구소(BGI)의 자회사, 우시앱텍, 우시바이오로직스 같은 중국 기업과 거래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3월 미국 상원 국토안보위원회에서 통과됐고, 이달 15일 하원 상정이 예정돼 있어 연내에 구체적인 법안 내용이 드러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한다.

국내 기업들은 의약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 반도체나 배터리처럼 제조 과정에서 중국산 원료나 기술을 제외시켜야 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아직 법안 내용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바이오 산업에도 미국의 중국 견제가 실현되면 규제 범위와 수위가 확장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갑작스레 중국 바이오 기업과 거래가 중단되면 미국 내 의약품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고, 이는 세계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벌써 생물보안법 대비에 들어갔다. 노바티스는 중국 기업과의 계약 관계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고 지난달 밝혔다. 파스칼 소리엇 아스트라제네카 최고경영자도 지난 3월 언론을 통해 "미국과 중국 시장용 의약품을 서로 독립적으로 제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우시앱텍에서 비만 치료제 원료를 공급받는 일라이 릴리도 최근 미국 내셔널 리질런스, 이탈리아 BSP파마슈티컬스와 위탁생산 계약을 맺었다. 미국 바이오협회는 아예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공식화했다. 외신에 따르면 회원사를 대상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미칠 영향에 대해 설문조사도 진행 중이다.

해외 소부장 기업들 몰려올라

국내 기업들은 중국에서 이탈할 수주 물량을 확보하는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우시바이오로직스의 경쟁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포함해 바이넥스, 에이프로젠,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 등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은 수주 확대 기회가 열렸다.

하지만 국내 의약품 소재·부품·장비 자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해외 기업들이 밀려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바이오 코리아에 참석한 한 유럽 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일본은 소부장 인프라가 이미 갖춰졌으니 현재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바이오 설비나 원재료를 판매할 최대 시장"이라고 말했다.

국내 한 바이오 소부장 개발사 대표는 "배터리와 반도체의 소부장은 그간 장기 육성을 위한 대책이 마련돼 왔지만 바이오 소부장은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며 "결국 한국 아닌 미국에 생산시설 건설을 검토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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