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의 잇따른 실정으로 한국 축구의 위상이 끝도 없이 추락하자 참다못한 국내 축구 지도자들이 행동에 나섰다.
설동식 한국축구지도자협회(지도자협회) 회장은 8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스포츠는 기본기가 탄탄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 축구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현장에 있는 지도자들이 오래전부터 이를 감지하고 축구협회에 개선을 건의했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대로 뒀다간 한국 축구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축구계에서 왕따를 당하고 쫓겨나는 한이 있어도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행동으로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지도자협회는 초, 중, 고교, 대학, 일반, 프로 지도자들로 구성된 사단법인이다. 협회는 전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며 "낙후된 축구 저변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대표팀 성적에만 몰두하는 현 (축구협회) 집행부의 졸속행정 때문에 한국 축구가 퇴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몽규 회장 '1인 독주 체제'가 가장 큰 문제"
설 회장은 국내 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정 회장의 1인 독주 체제를 꼽았다. 설 회장은 "축구협회가 그간 펼친 정책들은 선수 양성이나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정 회장의 연임을 위한 치적쌓기에 불과하다"며 최근 발표된 성인 남자 축구 1~7부 승강제를 예로 들었다. 예산이 빠듯한 하부 리그들은 현실적 한계 때문에 상부 리그 승격을 꺼릴 수밖에 없는데, 이런 측면을 간과한 채 시스템부터 도입한 건 차기 회장 선거 출마를 위한 행보라는 취지다.
그간의 잘못을 바로 잡지 못한 축구협회 내 축구인들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설 회장은 "축구협회에 있는 축구인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잘 전달하고, 회장에게 직언했더라면 한국 축구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도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짚었다.
"저 멀리 태풍이 바람에 그치려면..."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의 좌절과 선수단 갈등으로 인한 세계적 망신, 그리고 40년 만에 실패로 돌아간 올림픽 본선 진출 등에도 불구하고 설 회장은 "아직 '진짜' 참사는 오지 않았다"며 "이 모든 건 시작에 불과하다"고 봤다. 이어 "우리를 향해 오는 태풍이 토네이도가 될지, 적당히 불다 사라질 바람이 될지는 지금 우리 손에 달렸다"며 "썩어 문드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면 단순 수리로는 안 되고 기둥을 뿌리째 뽑아서 갈아엎어야 한다"고 말했다.
설 회장은 발표가 임박한 A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설 회장은 "실패하더라도 국내 지도자들에게 꾸준히 기회를 줘서 경험을 쌓게 해야 이들 또한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데 축구협회가 외국인 감독을 고집하는 걸 보면 답답하다"며 "세계적 명장을 키워내는 것도 세계적 선수를 양성하는 것만큼이나 축구협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