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창사 14년 만에 처음 연간 흑자를 낸 쿠팡의 고속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공세에 맞선 투자 확대 후폭풍으로 1분기(1~3월) 영업이익이 1년 전과 비교해 절반 넘게 쪼그라든 것. 쿠팡은 자칫 이익을 더 떨어뜨릴 수 있는 투자에 속도를 내고 고품질의 국산 물품 판매도 늘리며 당분간 알리, 테무와 전면전을 치른다는 구상이다. 유료 회원 요금 인상이 실적을 높일지 아니면 '탈쿠팡'을 부추기는 부메랑이 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미국 증시 상장사인 쿠팡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4,000만 달러(약 531억 원)로 전년 1억677만 달러(1,362억 원 달러)보다 61% 감소했다고 8일 밝혔다. 영업이익과 달리 1분기 매출은 전년과 비교해 28% 늘어난 71억1,400만 달러(약 9조4,505억 원)로 처음 9조 원을 돌파했다. 겉으로는 덩치가 커졌지만 실속을 차리지 못한 셈이다.
쿠팡 영업이익이 2022년 3분기 흑자로 돌아선 이후 계속 불어났던 데 비춰보면 1분기 실적 악화는 도드라진다. 2010년 창립 이래 물류 투자를 계속 이어가며 '계획된 적자'를 냈던 쿠팡은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6,718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첫 흑자를 거뒀다. 같은 해 매출 31조8,298억 원은 유통업계 선두인 이마트를 웃도는 성적이었다. 미국 월가에선 1분기 쿠팡 실적을 예상보다 부진한 '어닝 쇼크'로 보고 있다. 1분기 영업이익을 2,060억 원(JP모건)으로 예측한 곳도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쿠팡의 영업이익이 고꾸라진 건 최대 경쟁사로 떠오른 알리, 테무 영향이 크다. 초저가 상품을 앞세운 알리, 테무는 지난해부터 공격적인 광고, 입점 수수료 무료를 통한 한국 셀러 모집으로 한국 시장에서 상승세를 탔다.
알리, 테무는 아직 매출이 크지 않지만 월간 활성 이용자(MAU)만 보면 2, 3위로 쿠팡을 뒤쫓고 있다. 이런 알리, 테무에 대응해 투자를 늘리다 보니 영업이익이 줄어들었다는 게 쿠팡 측 설명이다. 올해 1월 인수를 완료한 명품 플랫폼 파페치의 손실도 1분기 영업이익을 떨어뜨린 이유 중 하나다.
알리, 테무가 막 매출 궤도에 오른 점을 감안하면 쿠팡의 앞날도 가시밭길이다. 그동안 로켓배송을 뿌리 내리게 하려고 투자를 계속 늘려 그물망 물류 체계를 구축해 온 쿠팡은 지난해 영업이익 흑자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이익 창출에 나서는 분위기였다. 반면 지금은 알리, 테무의 공세를 방어하기 위해 투자를 더욱 늘리는 상황이다. 로켓배송 전국화를 위해 2026년까지 3조 원을 투입해 8개 물류센터를 새로 짓겠다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이런 시도는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도 크다. 신규 투자가 국내 시장 장악력을 높일 순 있지만 자칫 1분기처럼 실적 부진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서다. 쿠팡이 내놓은 다른 대응책은 중국산 저가 상품과 대비되는 한국산 물품 판매 확대다. 쿠팡은 국산 제품 구매·판매액을 지난해 17조 원에서 22조 원으로 늘릴 방침이다.
기존 유료 회원인 와우 회원에 대한 요금 인상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쿠팡은 신규 와우 회원 월 구독료를 지난달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인상한 데 이어 8월부터 기존 회원도 새 요금을 적용한다. 2,900원 오르는 요금에 1,400만 명 규모인 와우 회원이 이탈할 경우 쿠팡의 본진이 흔들릴 수 있다.
거꾸로 와우 회원을 유지·확대하면 쿠팡은 매달 최소 400억 원 넘는 추가 이익을 챙기게 된다. 쿠팡은 와우 회원 유치를 위해 쿠팡이츠 무료 배달 등 관련 혜택 규모를 지난해 4조 원에서 올해 5조5,000억 원으로 늘릴 예정이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중국 이커머스의 진출은 유통 시장 진입 장벽이 낮으며 소비자들이 클릭 한 번으로 몇 초 만에 다른 쇼핑 옵션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며 "올해는 고객 경험을 강화하고 제조업과 중소기업 파트너들에게 필수적인 지원을 확대하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