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30대를 여는 올해는 특별하다.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의 2024~2025 시즌 상주 음악가로 선정돼 오는 10월 첫 무대에 오른다. 이달 12일에는 서울에서 생애 첫 마스터 클래스를 열어 세계 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 음악가들에게 전한다.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음악 신동'으로 주목받은 그가 '젊은 거장'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는 의미 있는 행보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정명훈 지휘의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서 협연한 조성진의 모습에서도 한층 여유가 느껴졌다. 연주곡은 로베르트 슈만이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아내 클라라를 위해 쓴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긴밀한 협력이 중요한 곡이다. 지난해 11월 같은 곡을 들려준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의 협연이 힘찬 도약과 상승의 대화였다면, 이날 연주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배려의 대화 같았다. 조성진도, 도쿄 필하모닉도 정제되고 절제된 연주를 선보였다.
조성진은 서주 없이 피아노 독주로 시작되는 첫 소절부터 이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체중을 실은 강력한 타건으로 역동적으로 표현했던 6개월 전의 무대와 달리 비교적 온화하게 곡을 열었다. 셈여림의 낙차가 큰 다이내믹한 음악을 들려준 이전 무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표정 변화나 움직임도 크지 않았다. 구간별로 속도를 줄이는 과정에서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뛰어난 기교의 비르투오소적 면모도 놓치지 않았다. 1악장 후반 카덴차(협주곡에서 독주자가 선보이는 기교적이고 화려한 부분)의 음향적 쾌감이 컸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에 이은 두 번째 앙코르곡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에선 조성진 특유의 섬세하고 정확한 기교가 빛났다.
창단 113년을 맞은 일본 최고(最古) 악단 도쿄 필하모닉의 진가는 2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도쿄필은 2015년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행사로 서울시향과 합동 공연을 했고 2016년 대구를 방문한 적이 있지만 정식 투어로 서울을 방문하는 것은 19년 만이다.
도쿄 필하모닉은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보다는 정밀한 선율이 돋보이는 악단이었다. 터질 듯 벅차오르는 사운드는 없었지만 정명훈과 악단의 일사불란한 팡파르는 충분히 찬란하고 통쾌했다. 정명훈은 2001년 도쿄 필하모닉 예술고문에 올랐고 2016년부터는 명예 음악감독에 임명돼 20년 넘게 악단과 교류를 이어 왔다.
정명훈의 도쿄 필하모닉과 조성진의 협연은 10일 전북 익산시, 11일 경기 고양시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으로 만날 수 있다. 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에선 정명훈이 지휘와 함께 베토벤의 삼중협주곡 피아노 연주도 맡는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 첼리스트 문태국이 협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