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될 결심'의 결핍

입력
2024.05.07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구약성서 열왕기(상권 3:16~28)에 솔로몬의 그 유명한 재판 얘기가 나온다. 두 여인이 찾아와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기라고 우긴다. 솔로몬은 ‘아기를 두 쪽으로 갈라 반반씩 나눠 주라’고 명령한다. 진짜 엄마는 절규하며 ‘저 여인의 아기이니 죽이지 말라’고 호소하지만, 가짜 엄마는 ‘반쪽이라도 갖겠다’고 한다. 솔로몬은 울부짖으며 포기한 여인에게 아기를 돌려주라고 판결한다. 어버이날(8일)이기 때문일까. 솔로몬의 지혜보다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느끼게 하는 구절이다.

□ 불교경전(백유경)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기로국(棄老國) 이야기다. 늙은 부모를 산에 버리게 하는 못된 법을 만든 왕을 혼내주려고 천신이 문제를 냈다. 똑같이 생긴 두 마리 말을 끌고 와서 물었다. “두 마리 중 하나는 어미, 하나는 새끼이다. 누가 어미냐?” 왕과 왕의 신하 모두 답을 몰라 쩔쩔맸다. 노부를 몰래 숨긴 효자 대신에게 그날 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두 말 사이에 풀을 한 다발 던지거라. 맛있는 풀을 양보하는 놈이 어미고, 덥석 물어서 먹는 놈은 새끼란다.”

□ 가임 여성 1명이 일생 동안 낳는 아이의 수가 0.78명에 불과하다. 결혼·독신 여부를 떠나 일반 성인 입장에서 해석하면, 색다른 분석도 가능하다. 부모가 되려는 비율이 출산율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감소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혼인비율이 줄어들고, 결혼한 부부도 애를 낳지 않는 경우가 높아진다면 성인 가운데 절반 이상은 부모 경험을 못 할 거라는 얘기다.

□ 솔로몬 재판의 여인이나 기로국 설화의 어미 말처럼 부모의 특징은 자녀에 대한 희생이다. ‘세대 간 회계’로 표현한다면, 미래 세대에 대한 자원의 자발적 양보이다. 한국을 포함, 선진국들이 과거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이 흐름이 꺾이고 있다. 국민연금과 재정운영에 대한 여론이 현세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회 국민연금특위 공론화위에서 당장은 ‘더 내고, 더 받는다’지만 누적적자가 702조 원이나 쌓이는 방안의 선호 비율이 높았다. 야당 대표가 현금 퍼주기 공약에 몰두하는 것도 ‘부모 될 결심’이 결핍된 풍속도인 듯하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