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은 왜 '4각의 링'을 고집하는 것일까

입력
2024.05.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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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복싱은 왜 4각의 링인가


모든 투기스포츠는 쌍방의 이견을 해소하거나 한정된 재화 또는 기회를 차지하기 위해 몸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행위에서 비롯됐다. 싸움판에 구경꾼이 모여들고, 나뉘어 응원하고, 누가 이길지 내기를 걸게 되면서, 싸움은 점차 싸움꾼의 동기보다 구경꾼들의 동기에 휘둘리게 됐다. 싸움이 그렇게 시합-스포츠로 바뀌며 규칙이 만들어지고, 종목이 분화하고, ‘태권도 정신’ 같은 것도 생겨났다. 싸움판은 경기장이 됐다.

복싱의 링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복싱이 싸움이던 시절, 싸움판의 담장 노릇을 하던 동심원 형태의 구경꾼들은 싸움이 복싱이 되고 기둥과 로프로 경기장이 생기면서 더 이상 선수에게 부딪히거나 그들의 체액이 튈 염려 없는 거리에서 싸움이 아닌 경기를 관람하게 됐다. 1838년 처음 공식 도입된 사각형 경기장이 지금도 ‘링(ring)’이라 불리는 까닭은 옛 구경꾼들이 이루던 동심원의 기억-관성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왜 링이 원형이 아니라 사각형이냐는 의문에 대한 전문가들의 답은 의외로 싱겁다. 기둥과 로프로 경기장을 구축하는 데 가장 쉽고 안정적인 형태가 사각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옥타곤’ 즉 종합격투기의 팔각형 링은 어떤가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직각의 코너가 사라질 경우 복싱이 더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스포츠가 될 수 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그만큼 선수들에게 더 큰 부상의 위험을 안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모양이다.

권투업계도 팔각링의 장단점을 검증하기 위해 1967년 5월 13일 시범경기를 연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그들이 팔각링을 검토한 이유는 거꾸로 코너에 몰려 퇴로를 차단당한 선수의 부상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권투업계는 하지만 코너가 주먹의 가동범위를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선수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복싱의 코너는 '싸움의 기억-흔적'에 저항하는 스포츠의 자존심 같은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