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KCC가 정규리그 5위 팀 최초로 프로농구 챔피언에 등극했다.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에는 챔피언결정전 첫 ‘형제 맞대결’에서 승리한 허웅이 뽑혔다.
KCC는 5일 경기 수원 KT아레나에서 열린 2023~24시즌 정관장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 4승제) 5차전에서 수원 KT를 88-70으로 꺾었다. 시리즈 전적 4승 1패를 만든 KCC는 이로써 2010~11시즌 이후 13시즌 만에 정상을 탈환했고, 전신인 대전 현대 시절을 포함해 역대 6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KCC는 이번 우승으로 프로농구에 새 역사를 썼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정규리그 5위 팀이 플레이오프 꼭대기에 선 건 KCC가 처음이다. 지난 시즌까지는 5위팀이 우승은커녕 챔프전에 진출한 적도 없다. KCC는 또 부산 시민들의 숙원도 풀어줬다. 부산에 연고를 둔 4대 스포츠(농구 축구 야구 배구)팀이 우승컵을 든 건 1997년 기아 엔터프라이즈(농구)와 대우 로얄즈(축구)가 마지막이다. ‘부산의 상징’인 프로야구 롯데는 1992년 정상에 등극한 후 현재까지 우승을 일궈내지 못했다.
새 이정표를 세우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시즌 전 KCC는 허웅 최준용 라건아 송교창 이승현 등 국가대표 라인업을 구축해 '슈퍼팀'으로 불렸다. 그러나 막상 시즌이 시작하자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며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KCC의 저력은 ‘봄 농구’부터 발휘됐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지난 시즌 준우승팀인 서울 SK를 3연승으로 따돌렸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정규리그 1위 팀이자 올 시즌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인 원주 DB마저 3승 1패로 무너뜨리고 챔프전에 올랐다.
파죽지세로 정상을 향해 나아가던 KCC는 챔프전 2차전에서 KT에 97-101로 지며 일격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슈퍼팀’은 흔들리지 않고 내리 3연승을 달렸다. 특히 이날 치러진 5차전에서는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전반을 40-36으로 앞선 KCC는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3쿼터 중반 캘빈 제프리 에스피톨라의 3점포와 라건아의 덩크슛 등으로 54-45로 격차를 벌렸고, 후반 들어 작전타임을 한 번 도 쓰지 않을 만큼 상대를 압도했다. 허웅이 21점, 라건아가 20점을 올리며 승리를 이끌었다.
시리즈 내내 평균 18.8점 5.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활약한 허웅은 기자단 투표 84표 중 31표를 획득해 플레이오프 MVP에 등극했다. 이로 인해 허웅은 아버지 허재 전 국가대표 감독(1997~98시즌)과 함께 ‘부자 MVP’의 진기록을 세웠다. 허 전 감독의 둘째 아들 허훈(KT)은 챔프전 2차전부터 풀타임을 소화하는 투혼을 발휘, 준우승팀 소속임에도 MVP 투표 3위(21표)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전창진 KCC 감독은 “정규리그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슈퍼팀 패배’ 등의) 기사제목을 보면 마치 KCC가 지기를 바라는 듯했다”며 “선수들도 마음이 안 좋아서 반드시 우승하자고 했다.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단단해졌고, 우승을 해내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허웅은 “오랜 시간 챔프전을 TV로만 봤는데, 그 동안 꿈꿔왔던 순간이 현실화돼 눈물이 났다”고 감격해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허훈이 감기에 걸려 잠을 못 잘 정도로 기침을 했다. 그럼에도 경기장에서 내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패배한 동생을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