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람의 불복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기소유예 대신 무혐의 처분을 했다. 헌재의 기소유예 처분 취소 사례가 늘어나면서 도입한 '기소유예 점검 제도'가 적용된 첫 사례다. 검찰은 해당 사례를 일선 검찰청에 전파해 억울한 사례가 없도록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5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유상민 서울서부지검 인권보호관은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A씨의 사건을 다시 살펴본(재기) 뒤 지난달 25일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A씨의 사연은 이렇다. 그는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주점에서 케이크가 담긴 다른 손님의 비닐봉지를 들고 간 혐의(절도)로 입건됐고, 경찰은 그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A씨가 선처를 구하고 있고, 형사조정(경제범죄 등에 대해 고소인과 피고소인이 합의하는 제도)을 통해 10배 이상의 합의금을 물어준 점을 참작해 재판에 넘기는 대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는 범죄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사안이 경미하거나 고려해야 할 특성이 있는 경우 기소하지 않고 용서해 주는 검사의 처분이다. 재판 없이 종결된다는 점에서 무혐의와 비슷하지만 원칙적으로 '죄가 인정된다'는 판단이기 때문에, 무고함을 주장하는 이들 중엔 기소유예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검사의 기소유예에 대해선 항고 절차가 없어 불복한 당사자들은 어쩔 수 없이 헌재를 통해 취소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A씨도 그랬다. 유죄 취지 처분을 받게 되자 A씨는 "내 비닐봉지인 줄 알고 착각해 가져간 것일 뿐 절도의 고의는 없었다"며 헌재에 불복 소송을 냈다. 수사기관에선 죄를 인정하는 듯하며 합의금까지 낸 A씨지만, 무죄 주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헌재는 그의 주장이 타당할 수도 있다고 보아이 사건을 정식 심판에 회부했다.
헌재의 심판회부 통지서를 접수한 검찰은 다시 사건을 점검했다. 폐쇄회로(CC)TV 기록 확인 결과, 사건 당일 A씨는 주점에 들어오며 장어가 든 비닐봉지를 카운터에 맡겼다. 그리고 주점을 나설 때는 근처 의자에 놓인 다른 봉지를 가져가는 대신, 정작 자신이 맡긴 봉지를 놓고 갔다. "훔칠 의도는 없었다"는 A씨의 주장과 상당히 맞아떨어지는 정황이었다.
결국 검찰은 A씨가 △술에 취해 남의 물건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했을 가능성 △공개된 장소에서 케이크를 훔칠 동기가 불명확한 점 등을 근거로 '기소유예'에서 '혐의 없음'으로 처분을 변경했다. 통상 헌법소원을 통한 불복 절차는 최대 2년이 소요되지만, 기소유예 처분 점검 제도가 적용된 이 사건은 접수(헌재 소송 접수 기준) 약 일주일 만에 구제가 이뤄졌다.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이 취소됐다는 내용을 A씨에게 알렸다. 헌재에도 같은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헌재가 심리 중인 '기소유예 처분 취소 사건'은 각하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검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기소유예 처분 당사자들에 대한 신속한 구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면밀하게 점검을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