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늘어나는 의대 신입생 정원이 당초 정부가 추진했던 2,000명보다 500명 줄어든 1,500명 안팎 규모로 사실상 결정됐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증원 백지화’ 주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신임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의료농단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했고, 의대 교수들은 3일에도 항의성 일시 휴진을 이어간다. 그러나 의료공백 사태 당사자인 전공의들이 독자노선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전체적인 응집력은 떨어지는 분위기다.
의협은 새 집행부 출범과 함께 본격적인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임 회장은 2일 열린 취임식에서 의대 증원 정책을 ‘의료농단’이자 ‘교육농단’이라고 규정하며 “의대 증원, 필수의료 패키지 등 각종 불합리한 정책을 하나하나 뜯어고쳐 반드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겠다”고 밝혔다. 또 “우리가 사분오열돼 패배주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바람”이라면서 “회원들의 힘을 모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31개 의대(미제출 차의과대 제외)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한 입시전형계획 변경안을 취합한 결과 내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 인원은 최소 1,489명에서 최대 1,509명까지 늘어난다. 그러나 의사계는 정부 발표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임 회장은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정부에 2,000명 증원 근거 자료 제출과 증원 승인 보류를 요청한 사실을 거론하며 “의협은 과학적인 근거 제시를 통해 정부 정책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깨닫게 하겠다”고 주장했다.
앞서 의협은 의사들이 원하는 테이블에서 정부와 일대일 대화를 하겠다면서 의대 교수, 전공의, 의대생 등으로 구성된 범의료계 협의체 구성을 추진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하지만 전공의들이 즉각 의협과의 연대에 선을 그으며 엇박자가 나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임 회장의 독단적 행동을 심히 우려하고 있으며 전공의들은 자율적으로 의사 결정할 것”이라고 내부 공지를 돌렸다.
실제로 전공의들 사이에선 임 회장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2020년 의사 파업 당시 전공의들 뜻과 무관하게 정부와 합의해 갈등을 빚었던 당시 최대집 회장 집행부 인사들이 이번 임 회장 집행부에 상당수 합류한 점도 한 가지 이유로 거론된다. 박 위원장은 의협에서 당연직 정책이사를 맡고 있지만, 임 회장 취임식에도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회장은 의대 증원 저지에 앞서 내부 분열 수습과 신뢰 회복이라는 숙제를 안게 됐다.
의대 교수들은 집단 휴진을 이어가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서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연세대 의대) 교수들에 이어 3일에는 서울아산병원과 울산대병원(울산대 의대) 서울성모병원(가톨릭대 의대) 전남대병원(전남대 의대) 교수들이 외래진료와 수술을 멈춘다. 울산대 의대 교수들은 휴진 당일 ‘의료대란과 교육병원의 나아갈 길’을 주제로 비공개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휴진도 필수의료 분야는 제외되고 참여 여부도 교수 선택에 맡겨 의료현장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교수협의회에서 개별적으로 휴진을 권고했으나 휴진일 하루 전까지 병원에 휴진을 공지한 교수는 없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에서도 전국의대교수비대위원장인 최창민 교수를 포함해 일부만 휴진하고 대다수는 진료실을 지키는 것으로 파악됐다. 울산대병원 관계자도 “교수단체 휴진 결의 이전에 예정돼 있던 부득이한 휴진 외에 진료 일정 변경은 없다”고 전했다.
정부는 의대 증원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전공의 복귀 유인책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최대 36시간 연속근무를 24~30시간으로 줄이는 ‘전공의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 공모도 이날부터 시작했다. 전국 218개 수련병원 중 희망하는 병원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중 2개 과목을 포함하되 인턴과 그 외 전문과목을 추가해도 된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적정 근무시간을 도출한 뒤 제도화를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