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나라 비상금인 일반예비비를 대통령실 이전과 해외 순방 등에 대폭 사용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쓰기 위한 예산인데 지침까지 위반해가며 ‘쌈짓돈’처럼 써왔음이 확인된 것이다.
본보가 확보한 예비비 편성 내역과 사용조서에 따르면 윤 정부는 취임 1년 차인 2022년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650억 원가량의 예비비를 사용했다. 당선자 시절 496억 원이면 청와대와 국방부 이전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예비비로만 그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지출한 것이다. 다만 전 정부에서 이미 예산이 짜인 상황에서 용산 이전이라는 돌발변수가 생겼으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집권 2년 차인 작년은 달라야 했다. ‘건전 재정’을 강조하며 본예산을 직접 짰다. 그럼에도 대통령 외교활동 지원을 위한 예비비를 무려 6차례 편성하며 총 532억 원을 썼다. 본예산에 편성된 정상외교 예산(249억 원)을 모두 쓰고 그보다 두 배 이상의 비용을 예비비로 사용한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큰 격이다. 대통령 정상외교가 비상금이 투입돼야 할 만큼 예측 불가능한 사안인가.
예비비는 각 부처 요청을 받은 기획재정부 심의 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국회 간섭 없이 정부가 사실상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구조다. 그러니 최대한 많이 편성해 놓고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사용해야 할 정책사업에까지 편리하게 가져다 쓴다. 작년에도 4조6,000억 원의 예산 중 1조4,000억 원만 사용됐지만 올해는 그보다 더 늘어난 5조 원이나 편성이 됐다.
물론 검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국가재정법은 이듬해 5월까지 총괄사용내역을 국회에 제출해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1년 뒤에야 사후검증이 이뤄지다 보니 엉성한 자료를 제출해도, 문제가 있어도 대충 넘어가기 일쑤다. 예비비가 눈먼 쌈짓돈이 되지 않으려면 적시 견제가 가능해야 한다. 정부가 예비비 사용계획을 확정하면 그 내역을 즉시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는 법안도 국회 계류 중이다. 적어도 예비비 사용내역을 일정기간마다 공개해 투명성을 확보하는 장치라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