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립대학 2.0 시대를 열자

입력
2024.05.04 10:00

지난 4월 16일에 '글로컬대학 30' 사업에 예비 선정된 대학 명단이 발표되었다. '글로컬대학 30' 사업은 혁신 의지와 역량을 갖춘 비수도권 지역 대학 30곳을 선정하여 5년 간 1,000억 원을 지원해 세계적 대학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가사업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경북대학교도 이 명단에 포함되었다. 아직 8월 말에 발표될 최종 선정 단계가 남아 있으나, 중요한 관문을 하나 통과한 셈이다. 돌이켜 보면, '글로컬대학 30' 사업 이전에도 수많은 교육부 주도의 고등교육 정책이 존재했다.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몇 가지 사업만 열거해 보아도, ACE 사업, CK 사업, CORE 사업, POINT 사업 등 여럿이다. 이들 사업은 대학을 극적으로 변모시킬 것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출범했으나, 사업 종료 시점에 돌아보면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글로컬대학 30' 사업은 경북대학교를 포함한 거점국립대학을 '세계적 대학'에 이르는 길로 인도할 것인가?

필자는 바로 현 시점이 경북대학교를 비롯한 국립대가 '국립대학 1.0' 모델을 폐기하고, '국립대학 2.0'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국립대학 1.0' 모델은 제조업 중심 시대에서 국립대가 표준적 인재 양성에 기여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서사는 다음과 같다. 집안 형편은 조금 어려우나 머리가 우수한 학생이 국립대에 입학한다. 4년의 교육과정을 통해 전공 지식과 역량을 쌓는다.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이나 은행에 입사하여 중산층에 진입한다. 이처럼 '국립대학 1.0' 모델은 대학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꽤나 근사하게 돌아가던 모델이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그 효용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말았다.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된 소위 지방 국립대의 위상 하락은 한국 사회의 구조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귀동 작가가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날카롭게 분석한 바대로, 제조업 중심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IT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변경된 점이 지역 경제에 치명타가 되었다. 인터넷 발달은 굳이 지방에 지점이나 지사를 설치하지 않아도 중앙에서 통제 가능한 환경을 제공한다. 지역사회에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던 제조업 시설들 역시 자동화가 고도화되면서 소수의 관리 인력으로 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기업 구조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대규모 공채를 통해 신입사원을 뽑던 관행이 인턴이나 경력직을 뽑는 방식으로 전환이 되었다. 지역 국립대 학생들이 수도권에 집중된 대기업의 인턴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 경쟁력을 발휘하기가 녹록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주로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하는 취업 정보에 접근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립대학 2.0' 모델은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할까? 필자는 경북대학교가 '글로컬대학 30'에서 제안한 연구중심 대학으로의 전환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북대학교가 제안하는 연구중심 대학은 학교 운영의 중심을 학부가 아니라 대학원에 두고 석박사급 인력양성을 목표로 하는 대학이다. 연구중심 대학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서사는 다음과 같다. 지역의 잠재력 있는 학생을 학석사 연계 과정으로 흡수한다. 학석사 연계 과정에서 학생은 학비를 면제받을 뿐 아니라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 나간다. 대학원 과정에서는 학석사 연계 과정의 학생과 여타 지역 대학에서 우수한 자원을 받아들인다. 대학원 과정에서는 해외 유수의 대학과 협력할 기회, 그리고 해외의 연구자들과 공동의 연구를 진행할 기회가 제공된다. 박사 과정을 마친 학생은 연구기관이나 대학에 취업한다.

어떻게 하면 '국립대학 2.0' 모델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앞서 열거한 교육부 주도 사업들은 왜 경북대학교를 혁신적이며 선진적인 대학으로 탈바꿈하지 못했을까? 첫째, 경북대학교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국가사업에 종속되었기 때문이다. 경북대학교가 '국립대학 2.0' 모델로 탈바꿈하기 위해 5년의 기간과 1,000억 원이라는 예산은 여러모로 부족하다. 국가사업을 동력으로 활용하되 장기적인 비전으로 지속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학교 구성원의 동의와 합의가 미진한 상태에서 정책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글로컬 대학 30' 사업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가 내부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최종 선정까지 남은 기간에 학교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조직을 보강해야 한다. 셋째, 개별 학문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획일적 접근이 문제였다. 연구중심 대학이라는 목표 아래에서도 AI 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정책과 기초학문 연구자를 배출하기 위한 정책은 차별화되어야 한다.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며 갈 길은 험난하다. 그러나 험난하다고 해서 피해 갈 수 있는 길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국립대학 2.0'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권순창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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