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장마철이면 맹꽁이 소리가 들리는 경기 파주의 집에서 함께 시를 썼다. 아내는 어느 때보다 “즐겁게”, 남편은 “절망하면서.” 최근 문학동네 시인선 208번(장석주 ‘꿈속에서 우는 사람’)과 209번(박연준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을 낸 장석주(69)·박연준(44) 시인의 이야기다.
1975년과 2004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시인으로 등단한 두 사람은 대학교 사제지간에서 연인이 됐고, 그렇게 10년이 흘러 2015년 함께 쓴 책(‘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을 내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며 부부가 됐다. 또다시 10년이 흘러 결혼 10년 차가 된 부부를 지난달 24일 파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두 시인 모두 5년 만에 시집을 냈고 시집 쪽수까지 164쪽으로 같다. ‘필연 같은 우연’으로 맞아떨어진 시집 출간이었지만, 시를 쓰는 과정만큼은 사뭇 달랐다.
“예전에는 슬픔에 푹 젖어 있어야 시가 나온다고 생각했다”는 박 시인은 이번 시집에 실린 시를 쓰는 과정은 ‘해방구’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청탁을 받지 않아 지켜야 하는 마감이나 의무감 없이 “그냥 내 마음이 달려갈 때 일어나는 빛, 그런 에너지를 이번 시집에 많이 담았다”는 것. 그렇기에 “이번 시집을 내고는 기분이 마냥 좋았다”고 말했다.
같은 질문에 장 시인은 “이번 내 시집의 초고를 보고 ‘이 정도밖에 못 쓰나’라는 절망과 ‘출판해도 될까’라는 회의가 들었다”고 털어놨다. 평소 자신을 ‘문장 노동자’로 소개할 정도로 다작하는 그는 누구보다 시를 쓰는 ‘스킬’을 많이 가졌다고 말했다. “마음만 먹으면 시 열 편, 스무 편을 그냥 쓸 수 있지만 그런 기술과 힘을 다 빼고 쓰려니 힘들었다”는 것. 장 시인은 초고부터 4교까지, 교정쇄가 나올 때마다 시를 끝까지 고쳐야만 했다.
장 시인은 “모든 습과 벽을 버리고 시를 처음 썼던 15세 소년의 마음”으로 썼다. 등단 초기 그를 향한 ‘낭만주의자’라는 수식어가 30년 만에 다시 등장한 이유다. 이번 시집 속 낭만은 “삶을 경험한 결과”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슬픔 한 점 없이 살았다면 파렴치한,/장년기를 넘긴 채 세월의 나이테를 더듬는다”(‘게르와 급류’)는 문장처럼.
“스무 살의 나는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었다/서른 살의 나는 이따금 생각나면 죽었다/마흔 살의 나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시인하다’)라는 박 시인의 시는 바깥의 ‘작은 존재’들에게 닿았다. 그는 “이르게 등단해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절에는 삶이 어렵고 혼란하고 괴롭기만 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내면을 치열하고 혹독하게 파고들던 박 시인의 시선은 이번 시집에서 “이제부터//작은 것에만 복무하기로 한다”(‘유월 정원’)고 선언할 정도로 나아갔다. 최근 시집 낭독회에서 독자로부터 오래전부터 그의 시를 읽어왔는데, 시 속 화자가 건강해진 것 같아서 기뻤다는 말을 들었다는 박 시인은 “뭉클하고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 덧붙였다.
부부는 평소 산문과 소설, 교양서 등 여러 글을 쓰며 서로에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시만큼은 예외다. 박 시인은 “시는 불가침 영역처럼 둔다”며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부부의 시집에서는 서로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다. 장 시인은 “삶의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에 카메오처럼 (시에 서로) 등장한다”고 전했다.
박 시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장 시인은 “박 시인 시집 반응이 좋다”고 애정이 묻어나는 자랑을 했다. 그러면서 “내 시집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오고 보니 ‘쓰고 싶은 만큼 썼구나’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친 부부는 작업을 하겠다면서 함께 카페에 남았다. 공통점보다는 다른 점이 많다고 입을 모으는 두 사람이지만, 꾸준하고 성실하게 쓰는 일만큼은 일심동체다. 이처럼 두 사람은 앞으로도 “이렇게 팔리지도 않는 시들을 한 장, 한 장, 또 한 장 모아서 묶어내는”(박연준) 시인, “허무한 숭고에 자기를 던지는 존재”(장석주)인 시인이라는 길을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함께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