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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 소설의 대가다. ‘완벽한 스파이’(1974)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1986) 등 베스트셀러가 한둘이 아니다. 대표작 ‘추운 곳에서 온 스파이’(1963)는 1,000만 부 넘게 팔렸다. 첩보원 출신이라는 이력이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영국 작가 존 르 카레(1931~2020)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 걸출한 첩보 소설들을 만들어냈을까.
르 카레는 필명이다. 본명은 데이비드 콘웰이다. 그는 영국 명문 옥스퍼드대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딱히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교사로 일하다 첩보원 일에 호기심이 생겼다. 영국 첩보기관 MI5(국내 담당)와 MI6(해외 담당)에서 일했다. 냉전이 격화되던 무렵이었다. 콘웰은 치열한 첩보전 한복판에서 보람보다 환멸을 느꼈다. 자신의 감정을 소설로 표현하고 싶었다. 첩보원과 작가 일을 겸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콘웰의 소설은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던 ‘007’시리즈와 달랐다. 첩보원의 낭만 대신 냉혹한 현실을 담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콘웰이 소설에서 인간의 본성을 차갑게 그린 이유는 뭘까. 첩보원으로 실제 접한 현실이 영향을 준 것일까. 다큐멘터리는 콘웰 아버지 로니의 그림자를 꼽는다. 로니는 뼛속 깊이 사기꾼이었다. 콘웰 집안은 명문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콘웰은 부유층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를 졸업했다. 배포가 남달랐던 아버지 덕분이었다.
사기꾼 아버지 로니는 콘웰에게 배신을 상징한다. 콘웰의 생모는 여성 편력이 심한 로니를 견딜 수 없어 집을 나갔다. 로니는 아들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콘웰은 외롭게 자랐다. 어려서부터 배신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콘웰은 “인간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사람은 이성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는 배신도 인간의 본능으로 여겼다. 냉전시절 소련에 고급 정보를 넘긴 후 망명해 파문을 일으킨 거물 첩보원 킴 필비(1912~1988)에 대한 평가에서도 그의 인식은 드러난다. 콘웰은 필비가 이념이 아닌 배신에 중독돼 소련에 협조했다는 거다.
다큐멘터리는 작가 콘웰의 삶을 좌지우지했던 심연을 탐색한다.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적절히 활용됐다. 콘웰은 “성생활을 빼고 뭐든 털어놓을” 자세로 다큐멘터리 촬영에 임했다. 희대의 사기꾼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소설로 거부가 된 아들에게 양육 대가를 요구했다는 대목은 충격적이다.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고, 경제적으로 불편함 없이 살다 갔던 첩보물의 대가는 평생 가족의 어둠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