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일하겠다고 했지만, 당연히 쉬고 싶죠.”
장모(68)씨는 인천에서 일하는 환경미화 노동자다. 그는 5월 1일에도 근무한다. 이날은 근로자의 날로 명명된 노동절. 노동의 신성함을 되새기고,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정부가 정한 법정 휴일이다. 하지만 하루만 놀아도 다음 날 치워야 하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도통 쉴 수가 없다. 선택의 여지가 사실상 없는 셈이다.
대다수 직장인이 하루 쉬어가는 노동절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오히려 사업장의 크고 작음과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에 따라 휴식도 수당도 받지 못한다. “모든 노동은 고귀하다”는 명제가 실현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근로기준법은 사업장 규모와 업종 등에 관계없이 노동절에 일하지 않더라도 임금을 주도록 보장하고 있다. 현실은 다르다. HR테크기업 인크루트가 지난달 23, 24일 직장인 1,076명에게 물어봤더니, 4명 중 1명(24.3%)이 이날 출근한다고 답했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현장 노동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휴식의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장씨는 “노는 날엔 쓰레기가 더 나오는데, 하루를 쉬면 이튿날 8, 9시간 계속 일해야 작업을 겨우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필 올해 노동절은 재활용 쓰레기 배출일과도 겹쳐 쉬려야 쉴 수가 없다.
고용 업체의 은근한 눈총도 부담이다. 미화원들이 소속된 청소업체는 주로 구청 등 공공기관과 연간 단위로 민간위탁 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하루 쉬는 동안 “거리가 지저분하다”는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추후 계약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휴일 근무를 강요하기도 한다. 자발적 노동이 아니라는 얘기다.
선택 자체가 불가능한 업종도 있다. 서울 노원구 일대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는 김문형(54)씨는 21년간 노동절에 단 한 번도 휴식하지 못했다. 원청(택배업체)이 요구하는 배달 물량을 소화할 수 없는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법정 휴일은 쉬는 날이 아니다. 택배기사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탓이다. 김씨는 “힘든 육체노동을 하면서 일요일에만 휴식하다 보니 법정 휴일에 쉬고 싶어 하는 기사들이 많다”면서도 “법적 근로자가 아니라 고민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관계자는 “노동절 휴식 문제는 원청과 노조가 직접 단체교섭을 해야 하는 사안이지만, 사측이 아예 응하지 않아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조건에 부합해도 정당한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 역시 부지기수다. 인크루트 설문조사에서 노동절에 일하는 노동자의 37.2%는 휴일근로수당이나 보상 휴가 등의 법적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작은 식당에서 근무하는 요리사 전모(22)씨는 “직원 수가 적어 쉴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추가 수당은 언감생심”이라며 “휴일 매출이 늘어나 업주만 신이 난다”고 꼬집었다. 그가 일하는 식당과 같은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규정에 포함돼 휴일 노동에 따른 가산수당(하루치 임금의 50%)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새로운 업종이 속속 생기고 노동시장도 세분화하는 현실에 맞게 노동 관련 법규정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5인 미만 사업장이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빠지면서 휴식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있다”며 “이들 사업장에 대한 구체적 규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글로벌 대세로 자리 잡은 ‘휴식 중심적 사고’로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노동자에게 하루 11시간 이상 연속 휴식 부여를 제도화했다”며 “단순한 노동시간 단축보다 휴식의 질과 양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가 근로기준법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