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미코는 왜 부엌으로 기어가려고 했던 걸까. 아들을 지키려고? 삶의 마지막 순간이란 걸 직감했을까‘. 다카바 사토루(68)는 아내가 죽은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수첩에 빼곡히 적힌 사건 기록들을 훑고 또 훑고 있다. 혹여나 실마리를 찾을까, 악착같이 그날을 재구성해 보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완전히 멈춰버린 수십 년 전 그날을.
1999년 11월 13일. 토요일이었지만 사토루는 오전 9시쯤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아파트 자택을 나서 일터로 향했다. 부동산 회사에서 일해 현장 다닐 일이 많았던 그에게는 평일과 주말이 따로 없었다. 아내 나미코(당시 32)도 외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전날부터 몸이 아팠던 두 살짜리 아들 고헤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약 2시간 뒤인 오전 11시 10분쯤 나미코는 고헤이의 손을 잡고 소아과 병원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귀가는 11시 40분쯤이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세차를 하던 주민이 돌아오는 모자를 목격한 시각이다. 나미코의 생전 포착된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미코는 오후 2시 30분쯤, 과일을 나눠 주러 집을 찾아온 아파트 주인에 의해 피가 낭자한 상태로 발견됐다. 나미코는 현관을 등진 채 왼편 부엌을 향해 엎드려 있었다. 목이 여러 군데 흉기에 찔렸고, 손에도 공격을 막으려다 베인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고헤이는 멀쩡하게 부엌 식탁에 앉아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 사인은 흉기에 찔린 데 따른 과다출혈. 가족의 평범했던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25년 악몽의 시작이었다.
현장에선 나미코의 피와 함께 범인의 피도 발견됐다. 경찰은 범인이 현관 앞 복도에서 나미코를 죽인 뒤, 우측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은 것으로 파악했다. 또 문 앞에 멈춰 서서 열쇠구멍을 통해 밖에 사람이 지나다니는지 확인한 후 도주한 것으로 추정됐다. 현관 바닥에 찍힌 신발자국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혈흔은 집에서 약 500m 떨어진 지점까지 이어졌다. 직선 거리로 가로질렀다면 도보로 6분이면 갈 거리인데, 범인은 사람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구불구불한 주택가 골목길을 돌았다. 동네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는 얘기다. 도중에는 공원 화장실에 들러 또 손을 씻었다. 혈흔이 끊어진 지점부터는 차량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조력자가 있었을 수 있다고 추측됐다.
“범인은 40~50대 여성. 혈액형 B형. 신장 160㎝.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정 파마 머리. 신발 사이즈는 240㎜”. 경찰은 감식 결과와 목격자 2명의 증언 등을 종합, 최대한 특정한 범인의 인상착의를 공표했다. 이윽고 범인의 몽타주가 그려진 전단지가 배포됐다.
경찰은 범인을 나미코와 갈등 관계에 있던 주변인 중 하나로 봤다. 도난당한 금품이 없어 단순 강도 살인으로 보긴 힘들었다. 나미코는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부엌 창문을 통해 방문자를 확인하고 문을 열 만큼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고 한다. 범인은 나미코가 ‘집에 들일 만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토요일에도 남편이 출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일 수도 있었다. 특히 목을 수차례 찔렀다는 점, 거꾸로 제압당할 위험을 안고 자신보다 젊은 피해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 등은 그야말로 ‘강한 원한’을 드러내는 근거였다.
경찰은 나미코의 사망 시각을 정오부터 오후 1시 사이로 좁혔다. 해당 시점에 나미코의 집에서 다투는 소리, ‘쿵’ 하는 소리, 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 등이 들렸다는 이웃들의 증언이 나와서다.
설명되지 않는 것은 오전 중 나미코의 행적이었다. 나미코는 남편 출근 직후인 오전 9시 전후 외출했던 것으로 보였다. 9시 30분쯤 택배기사가 집을 방문했지만, 아무도 없어 부재중 메모를 남겼기 때문이다. 진료를 받은 오전 11시 10분까지도 내내 밖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오전 10시 20분과 10시 40분, 친구가 집으로 두 번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자전거로 불과 5분 거리다. 그렇다면 나미코는 약 2시간 동안 어디에서 뭘 했던 걸까.
경찰은 나미코가 집을 나선 후 곧장 병원으로 향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범인과 조우했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 자리에서 범인과 심하게 다퉜고, 병원에 다녀왔고, 귀가한 후 다시 찾아온 범인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역시 지인에 의한 원한 살해로 보는 가설이었다. 그러나 수사는 나아가지 못했다. 대대적인 수사팀을 꾸린 경찰은 부부의 가족부터 주변인들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증거는커녕 뚜렷한 원한 관계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실낱같은 단서라도 필요하던 차에, 범행 당일 부엌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유산균 음료도 주목받았다. 현관 앞에는 누군가 음료를 마시다 뱉어놓은 흔적도 있었다. 사토루는 이 상표를 본 적도 없고, 가족들 중에는 유산균 음료를 먹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범인 물건 같다는 말이었다. 조사해봤더니 니시구에서 동남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니시미카와 지역 내에서만 판매되던 제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가 ‘스모킹 건‘이 될 리 없었다. 오히려 갖가지 수수께끼를 만들어내 수사에 혼선만 줬다. ‘범인이 음료수 방문판매원이었다’부터 시작해 ‘니시미카와 지역 거주자였다’라더니 ‘니시미카와 지역 거주자로 보이도록 속임수를 쓴 것이다’까지, 추측만 난무했다. 수사팀의 결론은 ‘그냥 나미코가 어디에선가 받아와 마셨을 수도 있다’였다고 한다.
현장에 있었던 고헤이는 끔찍한 범죄 피해자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동시에 고헤이가 두세 살 정도만 더 많았더라면 사건이 쉽게 풀렸을 수도 있었을 거라며 많은 이들이 애를 태우기도 했다. 유일한 목격자인 고헤이는 그날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고헤이는 세 살 때 ‘엄마가 어떤 아줌마와 싸웠어’라고 한 번, 네 살 때는 ‘편의점 아줌마가 들어왔어’라고 또 한 번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경찰은 ‘편의점 아줌마’라는 단서에 수사력을 집중했지만, 역시 소득은 없었다.
초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고헤이는 아빠와 함께 범인의 몽타주가 그려진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훌쩍 커버린 고헤이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편의점 아줌마’ 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은 물론 엄마의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미코는 세상에서 잊혀가고 있었지만 남겨진 남편은 포기할 수 없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지만, 아내와 살던 집은 사토루만의 ‘수사본부’가 됐다. 임차 계약을 계속 연장하면서 5만 엔(약 43만 원)씩 월세를 냈다. 퇴직 후 연금 생활을 하면서 20년간 매달 낸 돈이 수천만 엔에 달했다. 아내가 죽은 그날의 진실을 알 때까지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집념이었다.
현관에는 여전히 범인의 신발 자국이 검게 새겨져 있다. 붉었던 혈흔이 변색돼서다. 나미코가 생전 자주 틀었던 CD 등 유품도 그대로다. 벽에 걸린 달력은 1999년 11월 13일에 멈췄다. 사토루는 지금도 주 2회는 이곳을 찾는다. 아내가 죽어간 자리에 앉아,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혹시 그사이 들어온 추가 제보가 있는지 필사적으로 들춰보는 것이다.
사회 변화도 이끌어냈다. 살인사건 유가족들의 모임 ‘소라노카이(하늘나라의 모임)‘ 활동을 하면서 2010년 일본의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이끌어 냈다. 기존 범죄에도 소급 적용이 돼, 2014년까지였던 나미코 사건의 시효도 없어지게 됐다. 그래서 경찰은 지금도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고헤이는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 광고회사에 취직해 도쿄 생활을 하게 됐다. 죽은 아내에게 ’혼자서 아들을 잘 키워보겠노라’ 약속했던 사토루는 이제 다시 범인 추적에 전념하고 있다. 일흔을 바라보는 사토루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한 가지, ‘범인이 이미 세상을 떠나진 않았을까‘란 걱정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범인이 누군지 몰라 미워할 수도 없습니다. 공소시효는 사라졌지만 인간의 수명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범인밖에 모르는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