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제안에도 의정갈등 해소 난망… 의대 증원, 정치적 추진력은 얻었다

입력
2024.04.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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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 해법 관련 구체적 언급 없어
의사들은 '증원 백지화' 외 수용 거부
여야, 증원 공감대…저항 돌파력 얻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만나 여러 민생 현안과 함께 의정 갈등을 논의했으나 뾰족한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표가 의대 증원 규모 조정을 논의할 기구로 ‘국회 보건의료계 공론화특별위원회’ 구성을 재차 제안했지만 윤 대통령이 별다른 호응을 내놓지 않은 가운데, 설사 별도 협의체가 만들어진다 해도 ‘증원 백지화’를 고수하는 의사들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다만 여야가 의료개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크게 넓히면서 의대 증원 정책이 정치적 추진력을 얻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은 이날 여야 영수회담을 마친 뒤 브리핑에서 ‘양측이 총론적 대승적 인식을 공유한 의제’로 의료개혁을 첫손에 꼽았다. 이도운 홍보수석은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이 대표는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이며 대통령 정책 방향이 옳고 민주당도 협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앞서 이 대표는 모두발언을 통해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의료개혁은 반드시 해야 될 주요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확언했다.

하지만 의정 갈등을 풀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로까지 진전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 △의료진의 즉각적인 현장 복귀 △필수·지역의료 강화 등 ‘3대 원칙’에 입각한 대화를 강조하고, 정부가 내년도 의대 신입생 증원 규모를 50%까지 줄일 수 있도록 유연성을 발휘한 점을 긍정 평가하면서, 총선 기간 꺼냈던 국회 공론화특위 설치 제안을 다시 꺼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은 점에 비춰 볼 때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거나 의견 개진 수준에서 그쳤을 가능성이 있다.

공론화특위는 여야 정당과 정부, 의료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다. 형식이나 인적 구성 측면에서는 여야 정당 참여 여부를 제외하면 25일 출범한 의료개혁특위와 거의 비슷하고, 사회적 협의체라는 성격도 유사해 차별점이 크진 않다. 또 공론화특위를 통해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대타협을 이끌어내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 사실상 내년도 의대 정원을 동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난색을 표했을 수도 있다.

더구나 의사들이 공론화특위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0’에 가깝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료개혁특위 참여는 물론 정부가 제안한 일대일 대화마저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단체가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인 데다 2020년에도 의대 증원 문제로 당시 문재인 정부와 충돌한 적이 있어 민주당에 대한 불신이 큰 탓에, 의료계는 여야 영수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민주당 제안이 의사들을 움직일 만한 지렛대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무엇보다도 의사들은 증원 원점 재검토가 받아들여져야만 정부와 대화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야가 증원 백지화에 합의하며 사실상 백기투항하지 않는 한, 의사들은 그 어떤 대안이나 타협안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대 증원은 국민 지지와 여야 동의에 기반한 정책적 결정”이라며 “의사들이 원점 재검토만 되풀이하는 상황에서는 의정 대화가 불가능하고 정치적 타협안이 나올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여야가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에 관해 큰 틀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은 유의미한 결실이다. 전공의 집단 이탈에 이어 의대 교수 집단 휴진까지 겹쳐 곤경에 처한 정부는 의사계 저항을 돌파하기 위한 동력을 충전했고 대의명분도 두텁게 쌓을 수 있게 됐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가 초당적으로 의대 증원을 지지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이번 영수회담이 의정 갈등을 ‘의사 대 정부’가 아닌 ‘의사 대 국민’이라는 구도로 재편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