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은 두 가지 국면에서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먼저 △국방부 측이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 축소를 지시한 뒤 △이미 경찰에 넘어간 수사기록을 다시 회수해 오는 과정이 핵심이다. 그 두 과정에서 모두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군 사법제도를 총괄·조정하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다.
해병대 수사단에서 경찰로 넘어간 수사기록이 국방부로 되돌아온 지난해 8월 2일, 유 관리관은 가장 긴박한 하루를 보냈다. 당시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해외출장을 간 때였는데, 유 관리관은 경찰 및 대통령실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자료 회수에 깊숙이 관여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두 번에 걸쳐 유 관리관을 소환하며 가장 공들여 조사한 것도 바로 이날 어떤 일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2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8월 2일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로 넘긴 사건 수사기록이 국방부로 돌아오기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당일 오전 10시 30분, 해병대 수사단은 '원래 결정대로' 경북경찰청에 900쪽가량의 수사기록을 넘기기 시작했다. 방대한 양의 자료인 만큼 기록 내용에 대해 설명하며 사건을 인계했다.
낮 12시 무렵부터 이 사건과 관련한 전화 통화가 어지럽게 오갔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낮 12시 40분쯤 경북청 간부에게 전화해 "국방부에서 사건기록 회수를 원한다"고 전하며 유 관리관의 전화번호를 건넸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 파견된 경찰관이 국수본 관계자와 통화한 직후였다. 오후 1시 50분쯤엔 유 관리관이 경북청 간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건기록을 회수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이날 오후 7시 20분쯤 국방부 검찰단이 경찰에서 이첩 기록을 회수해 왔다. 대통령실 측이 원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직속상관이 부재 중인 상황에서 참모인 유 관리관이 속전속결로 수사기록을 되찾아 온 것인데, 이렇게 속도감 있게 회수가 이뤄진 배경에 대통령실이 있다는 의심이 불거졌다.
공수처가 2일 오후 늦게(시간 불명확)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여러 차례 시도 끝에 유 관리관과 통화한 내역을 확보한 것도 이런 의심을 뒷받침할 증거가 될 수 있다.
당시 정황을 따져보면 유 관리관 '혼자 힘으로' 경찰에서 자료를 찾아왔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갔던 이종섭 당시 장관이 귀국하기 전 유 관리관과 통화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가 국방장관 지시를 받아 경찰 및 대통령실과 긴밀히 연락하며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다. 외관상 유 관리관이 대통령실-국방부-경찰을 연결하는 '핵심고리' 역할을 한 구도라서, 공수처로선 의혹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유 관리관의 통화 내용에 대한 파악이 절실하다.
공수처 수사4부(부장 이대환)는 이날 유 관리관을 소환 사흘 만에 다시 불러 조사했다. 앞선 조사 때 수사 축소 및 사건기록 회수 경위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한 데 이어 의혹을 풀어갈 실마리를 잡기 위해 세밀한 부분까지 캐묻기 위해서다. 유 관리관은 이날 조사에 앞서 "(수사기관에) 성실히 답변하겠다"는 입장만 내놓을 뿐, 대통령실 통화 여부 혹은 자료 회수 배경을 묻는 질문에 묵묵부답했다. 유 관리관은 "일반적 법리 등을 설명한 것일 뿐 외압을 가하진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