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권력 서열 4위인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대만의 친(親)중국 성향 제1야당 핵심 인사와 회동했다. 동시에 중국은 대만을 향한 무력 시위도 재개하고 나섰다. 대만 총통 취임을 20여 일 앞둔 라이칭더 당선자의 독립주의 예봉을 미리 꺾어 놓겠다는 게 중국의 심산으로 풀이된다.
27일 대만 중앙통신에 따르면 왕후닝 주석은 이날 중국을 방문 중인 푸쿤치 국민당 입법원 원내총소집인(원내대표 격)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회동했다. 왕 주석은 이 자리에서 "대만 입법원의 새 임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원내총소집인이 본토(중국)를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환영했다. 이어 "우리는 모두 중화민족으로 이뤄진 한가족"이라며 "가족은 자주 소통하고 더 가깝게 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대만 국민당 고위 인사 간 소통은 이달 들어서만 두 번째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국민당 원로이자 거물 정치인 마잉주 전 총통은 앞서 10일 베이징에서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시 주석은 "체제가 다르다고 같은 나라라는 객관적 사실을 바꿀 수 없다"며 일국양제 통일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양측 간 부쩍 잦아진 소통은 다분히 다음 달 20일 제16대 총통에 공식 취임하는 라이 당선자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라이 당선자는 취임 후 여소야대 상황에서 친중 성향인 국민당과 손발을 맞춰야 한다. 그의 취임에 앞서 친중 성향 야당의 힘을 더욱 키워주면서 취임사 등에서 나타날 라이 당선자의 독립주의 메시지를 미리 견제하겠다는 게 중국의 속내로 풀이된다.
중국은 라이 당선자 취임 전후까지 무력 시위 강도 또한 높일 전망이다. 27일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중국 전투기와 드론 등 22대의 군용기가 이날 대만 인근 상공에서 포착됐다. 이 중 12대는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방공식별구역에 침투했다. 영국 가디언은 "중국의 이날 무력 시위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24~26일) 일정이 종료된 직후 이뤄졌다"며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간 기싸움의 일환이자, 취임을 앞둔 라이 당선자를 향한 압박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중국의 이 같은 견제가 미중 갈등을 심화시킬 수준까지 이르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뒤따른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최근 중국이 미국과의 각종 대화에서 대만 이슈를 다소 후순위에 배치하고 있다"며 "대만 문제보다 자국 경제를 통제하는 게 더 급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중국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과의 긴장을 낮추는 게 더 시급하기 때문에 공연히 대만 갈등을 증폭시키는 행동은 자제할 것이란 의미다.
실제 26일 베이징에서 블링컨 장관을 만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대만 문제는 넘어선 안 되는 레드라인(금지선)"이라는 기존의 원론적 입장만을 전달했다. 블링컨 장관을 만난 시 주석 역시 "악랄한 경쟁 대신 상호 성공을 위해 미중 간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며 상생 메시지를 강조했다. 반면 대만 문제와 관련한 언급은 공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