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29일 열린다. 대선 경쟁자였던 두 사람이 마주 앉는 건 처음이다. 지난 2년간 서로 외면하는 사이 정치는 극단의 대립으로 치달았고 민생은 표류했다. 진정한 '협치'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 대표의 국정 쇄신 요구에 윤 대통령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답할지가 관건이다.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 3년의 명운이 걸린 시험대에 섰다.
"영수회담은 일단 만남 자체가 성과"(우상호 민주당 의원)다. 양쪽 모두 '민생을 챙기는 리더'라는 명분과 정치적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전격적인 영수회담 제안으로 불통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총선 참패로 수세에 몰린 상황을 반전시킬 계기를 잡았다.
이 대표는 8번의 두드림 끝에 회담을 이끌어내며 국정운영 파트너와 유력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다지게 됐다. 특히 의제를 둘러싼 신경전이 길어지자 "일단 만나자"고 돌파구를 열면서 협상 주도권을 쥐었다.
문제는 성과다. 양측의 이견이 워낙 커 회담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합의문에 담길 내용을 놓고 양측의 기대와 속내는 현저하게 엇갈린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국정 쇄신 의지를 확인할 최소한의 조치를 강조해왔다. 박성준 수석대변인은 28일 브리핑에서 "손만 잡고 악수하고 사진만 찍고 끝나면 무슨 의미가 있나"라며 "정치라는 건 해답을 내놓아야 하고, 이젠 윤 대통령이 답할 차례"라고 압박했다. 민주당은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포괄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게 목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입장은 다르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현금 지원을 통한 경기 부양이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에 어긋나고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해왔다. 채 상병 특검 등은 여당과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특히 대통령실은 이번 회담으로 협치의 물꼬를 트고, 여야정 협의체를 띄워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는 데 방점을 찍었다. 반면 민주당은 "들러리가 될 수 없고, 윤 대통령이 달라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 표시가 필요하다"면서 이번 회담에서 성과를 거둬야 후속 논의가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이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윤 대통령의 '통 큰 양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용태 당선자는 "채 상병 순직 사건은 국민적 의혹이 큰 만큼 대통령이 진상 규명 의지를 천명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양측의 입장차가 평행선을 달려 한 번 만나고 그치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접점을 찾을 여지가 없다고 판단할 경우 정국은 출구 없는 극단적 대치로 격화될 수밖에 없다.
'빈손 회동'으로 끝날 경우 입을 정치적 타격은 윤 대통령이 더 크다. 총선 민심을 외면했다는 거센 비판에 더해 거대 야당이 주도권을 쥔 국회에서 운신의 폭이 한층 좁아진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면 된다"고 강경 모드를 예고했다.
다만 이 대표 또한 의석수로 밀어붙이는 일방 독주는 부담이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차기 집권을 목표로 하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경모드로만 일관할 경우 책임 정치에 반하지 않겠느냐"고 민심의 역풍을 경고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영수회담 경험이 풍부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번 회담은 윤 대통령과 대한민국 3년의 운명을 가를 마지막 기회"라며 "이 대표와 협치(協治)를 넘어 공치(共治)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발씩 양보해 초당적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