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부터 사장이 임금을 안 줬어요. 쥐 나오는 숙소에서 먹고자면서 일주일 내내 새벽부터 일했는데..."
지난해 초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밟은 캄보디아 국적의 이주노동자 A(21)씨는 이제 희망이 사라졌다. "주겠다, 주겠다"면서 수개월째 임금 1,300만 원을 지불하지 않는 한국인 사장 때문이다.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온 A씨는 충남의 한 농장에서 1년 2개월을 일했다. 한 달에 단 이틀만 쉬면서 오전 6시부터 매일 10시간을 가까이 밭일을 했다. 창고를 개조한 조악한 숙소 비용으로 매달 31만 원을 월급에서 떼였지만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버텼다. 그러나 사장은 노동만 강요할 뿐, 차일피일 임금 지급을 미뤘다. A씨는 "사장의 말을 믿고 한 겨울에도 계속 일했다"면서 "지인들에게 매달 돈을 빌려 생활해 300만 원 넘게 빚을 졌다"고 토로했다.
134번째 '세계 노동자의 날'(5월 1일)을 앞둔 28일 이주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차별을 규탄하고 권리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건설노동자부터 학원강사, 결혼이주여성 등 다양한 직군에 종사하는 300여 명이 함께 외친 구호가 주말 하늘에 울려 퍼졌다.
민주노총과 이주노조,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은 이날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를 개최했다. 법정공휴일인 5월 1일에도 쉬지 못하는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려해 전주 일요일마다 집회를 여는 것이 전통이 됐다.
참가자들은 해가 바뀌어도 개선되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의 부당한 처우를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를 확대하면서도, 왜 사업장 변경 제한이나 임시 가건물 기숙사 등 열악한 노동현실은 외면하고 있느냐"는 의문이다.
가장 많은 E-9 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 개선을 바랐다. 현행 제도상 횟수와 허용범위가 제한돼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하소연할 방법이 없는 탓이다. 네팔 출신 건설노동자 바하두르(33)는 "한 달 전 허리를 다쳐 강도가 낮은 업무로 변경해 달라고 사장에게 요청했지만 '집(본국)으로 돌아가라'는 말만 반복했다"면서 "다른 곳에서 일하고 싶어도 부당한 처우를 직접 입증해야 해 사업장 변경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전문인력으로 구분되는 E-2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차별이 덜한 건 아니다. 2년 전 미국에서 온 학원강사 앨리슨(28)은 "백인이 아닌 강사는 단지 피부색 때문에 임금을 덜 받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결혼이주여성인 베트남 출신의 통번역가 도튀향(35)도 "같은 일터에서 일하지만 한국인들과 다른 임금을 받는다"며 "귀화를 했어도 이주여성이면 차별의 굴레는 벗어날 수 없느냐"고 반문했다.
한국 시민·종교단체 활동가들도 연대의 뜻을 밝혔다. 정지현 사회진보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은 "올해 역대 최다인 4만9,000여 명의 계절노동자가 한국에 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들의 노동권과 주거권,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대 노총은 다음달 1일 세종대로와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절 대회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