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리스크 껴안은 '종말의 바보'… 결정의 배경

입력
2024.04.28 10:56
'종말의 바보', 유아인 재판 중 공개한 이유는?
참여한 스태프와 배우들 위한 선택
출연 배우 SNS 한탄 재조명

'종말의 바보'가 유아인의 마약 파문 이후 첫 공개작이 됐다. 유아인이 현재 재판 중인 만큼 빠르게 공개, 더 큰 질타를 피하겠다는 전략일까.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종말의 바보'는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D-200, 눈앞에 닥친 종말에 아수라장이 된 세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간수업' '마이 네임' 등을 통해 섬세하고 노련한 연출 내공을 과시했던 김진민 감독과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 등의 작품으로 현실에 대한 신랄한 묘사와 탄탄한 필력을 선보였던 정성주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김진민 감독은 공개를 앞두고 "이제 한국에서 드라마를 만든다는 게 온 세상과 만나는 일이 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지만, 각자의 세상에서 상상해 볼 만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고두고 꺼내보게 되는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종말의 바보'는 당초 지난해 공개 예정이었다. 지난 2021년 넷플릭스 측은 유아인과 안은진의 캐스팅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당시 유아인은 '지옥'과 영화 '살아있다' 흥행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남자 주인공 역할을 소화했으나 현 시점 예고편과 포스터, 배포된 보도자료에서 유아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유아인의 마약 파문 때문이다.

유아인은 2020년 9월부터 2022년 3월까지 181회에 걸쳐 프로포폴, 미다졸람, 케타민, 대마, 코카인, 졸피뎀, 알프라졸람 등 다수의 마약을 상습적으로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지인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대마흡연을 강요한 혐의도 받고 있다. '종말의 바보' 뿐만 아니라 유아인 주연의 '승부' '하이파이브'에도 날벼락이 떨어졌고 연이어 공개를 포기했다. 현실적으로 배우 교체나 재촬영은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김진민 감독은 후반 작업에서 유아인의 분량을 축소, 편집에 다시 공을 들였다.

이 가운데 '종말의 바보'는 결단을 내렸다. 작품을 묵힐수록 손해가 된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달았기 때문일까. 업계에 따르면 '종말의 바보' 제작비는 약 300억 원이다. 공개 결정에는 글로벌 시청자들이 국내 시청자들보다 리스크에 덜 예민하다는 점도 감안한 듯하다. 아직까지 유아인의 재판이 진행 중인 점도 한몫했다. 현재 4차까지 진행된 공판에서 유아인 법률대리인은 유아인이 우울증과 공황장애, 수면장애를 장기간 앓았다면서도 시술과 동반해 수면마취제를 처방받았다고 주장했다. 유아인의 5차 공판은 내달 14일 열리나 유아인이 혐의를 뒤늦게 인정할 가능성은 적다.

이러한 공개 결정에 대해 무작정 비판만 던질 순 없다.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스태프의 피땀 눈물이 담긴다. 비용과 시간만 따져도 값을 매길 수 없는 손해다. 주연 배우의 통편집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원작을 기반으로 한 '종말의 바보'의 스토리라인에는 유아인이 맡은 인물이 지대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넷플릭스는 유아인의 복귀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최선을 선택한 것이다. 배우 리스크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배우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젠 입증됐고 막아줄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종말의 바보' 공개 보류가 공표된 후 배우 김영웅의 한탄 섞인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의 잘못된 행동이 사실이라면 지탄의 대상임이 확실합니다. 다만 그냥 못내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희생으로 탄생을 앞두고 있었던 '종말의 바보'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까 봐 아쉬울 뿐입니다."


우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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