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버린 애플 '비전 프로' 열기에...기대주 XR 열풍도 늦어지나

입력
2024.04.28 09:00
분석가 "비전 프로 올해 출하량 40만∼45만 대"
2025년 보급형 출시도 안갯 속
새 성장동력 기대한 삼성, LG 디스플레이 ‘난감’


애플이 2월 내놓은 혼합현실(MR) 기기 '비전 프로'에 대한 관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2023년 말 메타의 '메타 퀘스트 3' 출시에 이어 애플이 뛰어들면서 '확장현실(XR) 열풍'이 불 거라 기대했던 정보기술(IT) 업계도 당분간 다음 바람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 공급망 전문가로 유명한 궈밍치 TF인터내셔널증권 연구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공급망 동향 조사를 진행한 결과 애플이 2024년 전 세계 비전 프로 출하량을 40만∼45만 대 수준으로 잡은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이는 시장이 예측해 온 70만∼80만 대의 절반 수준"이라고 전했다.

궈 연구원은 더 나아가 애플이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제품의 로드맵을 재검토하면서 내년에 비전 프로의 뒤를 잇는 신제품이 출시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시장에선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애플이 내년 중 비전 프로의 저가형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 기대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 내 비전 프로의 시장 반응이 기대 이하로 나타나면서 자연스레 미국 바깥에서 출시에 대한 기대감도 감소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출시 초기 애플스토어로 몰려들던 분위기가 사라졌다"면서 "시험 예약자가 나타나지 않고 하루에 여러 차례 있었던 시험이 일주일에 몇 차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미국 내 반응을 전했다.



미국 10대 33% VR 헤드셋 보유, 절반 "거의 안 써"


애플은 비전 프로를 '공간 컴퓨팅 기기'로 홍보하며 XR의 새로운 쓰임새를 제시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기존 XR 기기들이 머물렀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①배터리 문제나 ②'VR 울렁증' 때문에 오랫동안 사용하기 쉽지 않고 ③무거운 데다 ④해당 기기를 활용해 볼 만한 킬러 콘텐츠가 없다는 것이다.

애플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투자은행(IB) 파이퍼샌들러가 최근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조사에 응한 미국 10대 총 6,020명 중 33%는 VR 헤드셋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VR 시장의 기존 선두주자인 메타가 '메타 퀘스트' 헤드셋을 적극 보급한 결과지만 이들 중 56%는 VR기기를 가지고는 있으되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애플이 XR 상품의 속도조절에 나설 경우 XR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한국 기업들도 서두를 이유가 없게 된다. 삼성전자는 퀄컴·구글과 지난해 초 XR 기기 제작을 위한 협업을 알렸으며 LG전자는 메타와 협업을 논의했다.

XR 시장의 개화를 기대해 온 IT업계 입장에선 좋은 소식은 아니다. 삼성·LG 두 디스플레이 회사는 XR 기기에 들어갈 마이크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개발에 열중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길 기대해 왔다. XR 플랫폼이 빨리 확산했으면 하며 VR 게임을 개발해 온 게임사들도 비전 프로의 부진에 아쉬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VR 기기들이 착용 후에도 바깥을 볼 수 있게 하는 등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 번 착용하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장벽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XR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 또한 건재하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XR 기기의 출하량은 2022년 대비 19% 줄었지만 지난해 4분기 출하량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0% 늘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시장은 느리게 성장하겠지만 점점 더 많은 제작사가 XR 시장에 참여할 것"이라면서 "XR이 스마트폰을 이을 차세대 개인 기기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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